형사와 대화를 마친 민희는 또다시 낯선 감정을 느꼈다. 어떤 감정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아니었다. 뭔가 속이 시원해지는 그렇다 이건 개운 함이었다. 형사에게 이야기를 한 것 만으로 개운함을 느끼다니, 이것은 그녀에게 놀라운 변화였다. 민희는 약간 들뜬 어조로 민혁에게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조심스렇게 털어놨다.
「개운하네요?」
「뭐가요?」
「안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왠지 모를 개운함을 느꼈어요.」
「문성식에 대해 다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꺼림칙한 느낌이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민희 씨는 그 꺼림칙한 감정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꺼림칙함은 민희 씨에게는 쓸데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굳이 꺼내서 자각하지 않으면서 살았기 때문이죠. 좀 쉽게 이야기하면 불편한 감정들이 퇴화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감정을 무시할 수 있게 진화했다고 해야 했다고 할지도. 어쨌든 지금 그것을 느꼈다는 건 좋은 거예요. 애써 드러내지 않던 감정들에 대해 민희 씨가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좋은 변화입니다.」
「역시 상담이 큰 도움이 되고 있나 봐요.」
「하지만 아직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다고 했잖아요. 뭔가 민희 씨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직 더 있는 거예요. 너무나 굳게 잠겨 있어서 본인조차 못 여는 거랄까? 아마 그걸 열어 밖으로 꺼낸다면 지금과는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 거예요. 지금과는 다른 삶이 필요하다면 말이죠.」
「지금과는 다른 삶이라.... 사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졌어요. 벽 안에서 혼자 지내던 때와는 다른 삶 말이죠.. 그런데 그걸 꺼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오늘도 봐요. 이미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있잖아요. 제가 옆에서 불편한 감정의 고름을 끝까지 다 짜내 줄게요.」
「고마워요. 그럼 오늘 밤에도 상담해주시는 건가요?」
「그럼요. 물론이죠. 전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그나저나 아까 그 형사 민희 씨 이야기 듣고 꽤 놀란 것 같더라고요」
「그런가요? 저야 표정을 못 보니..」
「아. 표정에는 큰 변화는 없었는데 목소리가 좀 격양된 것 같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왜 말 안했냐고 저한테 따지 듯했죠?」
「눈치를 보니 문성식 부인 만났는데 불륜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한 것 같은데요?」
「뭐. 그녀도 말하기 꺼림칙했나 보죠. 아님 뭔가 숨겨야 할 사정이 있다든지..」
「그럼 문성식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요?」
「저야 모르죠. 의사 선생님.. 정신과 상담으로도 부족해서 이번엔 탐정이 되시게요?」
민희는 이제 더 이상 문성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그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아뇨. 민희 씨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잡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고민한다고 뭐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요. 경찰이 잡을 거였으면 진즉 잡았겠죠.」
「그런가요?」
「민혁 씨는 다른 거 말고 저에게 좀 더 신경 써주세요..」
민희는 쑥스럽지만 조금 더 속마음을 드러내기로 했다.
「넵」 민혁은 민희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당황했지만 기쁜 듯 환한 분위기로 답을 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밤에 봐요.」
민혁은 민희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네고서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