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 어두운 방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중학교 시절 나였다. 지금 우는 이유는 모르지만 느끼고 있는 감정만큼은 명확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밝은 빛이 들어왔다. 그녀는 어두움이 사라지는 게 더 두려웠다. 밝은 빛과 함께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이 닫히면서 다시 어둠이 그녀를 덮쳤다.
민희는 잠에서 깼다. 한동안 꿈을 꾸지 않던 그녀였는데 너무나 선명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 깊숙이 박혀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흘리는 눈물이라 그냥 흐르게 놔뒀다.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자 민희는 얼마나 잠을 잤는지 궁금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아직 밤인 것만 알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부스럭거리자 반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일어났어요? 좀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근데 얼마나 잔 거예요?」
「그렇게 오래 자진 않았어요. 뭐, 잠깐 기절했다가 일어난 정도?」
「진짜 기절한 걸지도 모르죠.」
「지금 농담할 때에요? 진짜 괜찮은 거죠?」
「네.」
「다행이에요. 아까는 갑자기 숨을 못 쉬어서 놀랐어요. 이야기하다 갑자기 패닉이 온 것 같아요.」
「꿈을 꿨어요. 잠깐이지만.」
「꿈이요?」
「꿈에서 중학생인 내가 울고 있었어요. 사실 그 시절은 거의 잊고 지냈는데 너무나 선명하게 꿈에 나타났어요.」
「봉인되어서 못 나오던 게 이제는 봉인이 풀리려고 하나 보네요.」
「사형수는 점심 먹기 전까지 아무도 안 건든대요. 형 집행을 아침에 하기 때문에 점심이 나올 때까지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걸 알기 때문에요. 그 공포감에 미치는 사람도 있데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종교나 신으로 그 공포감을 이겨 내는 거죠.」
「꿈인데도 그런 공포감을 느꼈어요. 오히려 죽음보다 더 큰 공포감을요」
「그 공포와 싸울 준비가 된 거예요?」
「아직은 그 무서움이 몸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죽을 정도는 이제 아닌 것 같아요. 좀 괜찮아졌어요. 백신을 맞아서 그런 건지」
「백신이요?」
「꿈이요. 꿈에서 한번 겪고 오랜만에 울었더니 긴장할 기운도 없네요.」
「힘들면 굳이 안 꺼내도 돼요.」
「난 행복해지고 싶어요. 남들처럼 살고 싶다고요.」
「알겠어요. 그래도 아까처럼 패닉이 올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해요. 일단 좀 편하게 꿈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어두운 방에서 여자 아이가 울고 있었어요. 체형, 목소리 그리고 방을 보니 중학교 때 나 더라고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서워서 울고 있었어요.」
「어두운 게 무서웠던 걸까요?」
「이녀 어둠이 무서운 게 아니었어요. 울면서 빌고 있더라고요. 제발 문이 열리지 않기를. 그러다 문이 열리고 빛이 방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빛과 함께 남자가 제 방으로 들어왔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혁은 조용히 그녀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 남자는 아버지였어요.」
「힘들면 이야기 멈춰도 돼요.」
「아뇨. 아버지는 날 무척이나 예뻐했죠. 늘 사랑한다고 말해 줬어요. 난 그런 아버지를 엄청 좋아했고 늘 자랑스러워했죠. 그런데 중학교 때 첫 생리가 터지고 난 뒤 그 일이 시작됐어요. 어느 날 밤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민혁은 민희의 이야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하지 못한 뒷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혁은 떨고 있는 민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어요. 아버지가 밤에 내 방에 들어온 건. 몇 번 저항도 해봤는데 헛수고였어요. 날 지켜주던 든든한 어깨가 날 파괴하는 걸로 변했거든요. 엄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나도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밤이 오는 게 너무나 무서웠어요. 언제 그 문이 열릴 줄 몰랐거든요. 아까 이야기했던 사형수 이야기 같이 말이죠.」
그건 민희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버지도 지금 없잖아요.」
중학교 2학년 때 사라졌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게 사라진 게 아니에요. 죽은 거예요.」
네?」
「그날 밤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 날이었어요. 그 사람이 내 위에 있었는데 뭔가 끈끈한 게 내 얼굴로 튀더니 갑자기 축 늘어지더라고요. 그리고는 늘어져있는 아버지 뒤로 엄마가 보였어요. 난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한 채 밑에 깔려있었고 엄마가 아버지를 내 몸에 서 떼 줬어요. 그 사람 목에는 엄마가 주방에서 늘 쓰던 칼이 꽂혀 있더라고요. 내 얼굴에 튄 건 그 사람의 피라는 걸 알고 나서 난 정신을 잃었어요. 그리고 깨어나니까 엄마가 내 옆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난 그냥 어마를 안아줬어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준 엄마가 너무 고마웠어요.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난 몰라요. 그날 이후 그날에 대해선 엄마랑 이야기를 안 했거든요. 그리고는 난 엄마 말고는 아무도 안 믿는 삶을 시작했죠.」
민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민혁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안아 줬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민혁은 조용히 민희를 위로했고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나 이제 행복해질 수 있는 거죠. 행복해지고 싶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어요.」
네. 이제 행복해질 수 있어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