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집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로 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그동안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기에 세세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사각지대가 필요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희한하게 민혁에게 전화가 오거나 간병인이 찾아오곤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작위적인 타이밍이었다. 그 말인즉 어딘가에 그녀의 행동을 감시하는 카메라나 CCTV가 있다는 것이다. 민희는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앞이 안 보이는 민희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일단 약 복용량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그녀의 시력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 민혁이 직접 조제해 가져다준 약이었다. 약을 줄여보면 그에 대한 믿음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알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약을 줄인다는 건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약을 줄이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시력을 찾기 위해 먹었던 약인데 차도가 없는 걸 보면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복용량을 줄이는 건 누구도 모르게 해야 했다. 약을 줄인 지 며칠이 지났다. 약을 줄이자 큰 변화가 생겼다. 일단 잠이 줄었다. 밥을 먹고 바로 잠을 잤던 건 약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치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건 약을 줄인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민혁에 대한 믿음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약을 줄이면서 희미하게 앞이 보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윤곽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줬던 약은 시력이 돌아오게 도와주는 게 아닌 그 반대였던 것 같다. 그녀가 갑자기 기운이 없고 자신을 피하자 민혁은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며 걱정스러워했다. 민희에게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이번에는 그다지 길게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냉정해지기로 했다. 평소와 행동이나 말투가 바뀌면 그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챌 것이다. 철저히 그를 속여야 했다. 그러면서 집 구조를 조금씩 조사해 나갔다. 일단 자신의 집 구조와 가구 배치가 비슷하지만 자신의 집이 아닌 것 확실했다. 자신의 집보다 조금 더 층고가 높고 크기도 더 큰 것 같았다. 게다가 방이 그녀는 몰랐던 방이 두 개나 더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움직이는 동선에는 방문이 없었기에 앞이 안보였다면 계속 그 방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조금씩 주변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건 바로 자신을 도와줄 믿을만한 사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건 민혁과 그가 추천해준 간병인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간병인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면 평소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없던 그녀였기에 딱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