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ight 40

by Bullee

그녀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냉정하게 감정을 유지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냉정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정도로 단단해지기까지 했다. 민혁이 속인 것에 대해 혼란스럽고 큰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녀는 그 정도로는 좌절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녀는 약 복용량을 줄여 나갔다. 남은 약은 하수구와 세면대를 통해 조금씩 버렸다. 약 복용량을 더 줄였지만 더 이상 선명해지진 않았다. 다만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시간은 조금 늘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그녀는 복용량을 줄였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평소 행동대로 하루를 보냈다. 다만 누워서 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카메라를 찾아보기로 했다. 감시의 눈이 있으면 그만큼 그녀의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최종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민혁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려면 자신이 우위에 있어야 했다. 그녀가 생활하는 반경인 침실, 거실 위주로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작은 카메라를 숨겨 놓은 것 같다. 언제까지 카메라만 찾을 수는 없었다. 카메라 찾는 건 포기하고 좀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밖에 나가보려고 했지만 현관문은 그녀가 열 수 없도록 시건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민혁이 세미나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비록 2박 3일 출장이지만 그녀에게는 큰 기회였다. 오전에는 간병인이 다녀가기 때문에 간병인이 갈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간병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자 침실 밖으로 나왔다. 일단 평소처럼 행동했다. 점심을 먹었고 거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력에 의존해 두 개의 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왠지 그 문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듯 한 그녀에게는 탈출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불길한 예감을 뒤로한 채 문으로 다가갔다. 평소 다니 던 동선이 아니었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덜컹덜컹」

손잡이는 잠겨서 돌아가지 않았고 열리지 않는 문이 자물쇠에 걸리는 소리만 났다. 민희는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안도감도 함께 느꼈다. 민희는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문을 열어보지만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걸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잠긴 문을 지나 두 번째 문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민희는 내심 열리지 않기를 원하면서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손잡이가 돌아가면서 문이 열렸다. 민희 눈에는 문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습한 공기와 뭔가 썩는 냄새가 그녀의 코를 강타했다. 습한 공기 냄새를 맡으며 지하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습한 공기와 고약한 냄새가 그녀의 입장을 환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하면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 그녀의 상태로 가능할지 몰랐다. 하지만 문이 열린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벽에 의지한 채 발로 계단의 존재를 확인하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앞이 거의 안 보이는 그녀에게는 어둠이 무섭진 않았다. 한 계단 씩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바닥에 발이 닿았다. 손 끝 감각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 한쪽에서는 그만 올라가라고 그녀를 재촉했지만 그녀의 발은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그녀의 손에 뭔가 딱딱한 게 닿았다. 천천히 물체를 만져보며 정체를 파악했다. 꽤 큰 물체였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 손잡이가 잡혔다. 서랍이었다. 서랍을 열고 손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뭔가 유리 같은 촉감이 손에 닿았다. 물건을 잡은 순간 손에 너무나 익숙하게 착 달라붙었다. 유리 같은 촉감에 네모난 형태의 물건. 왠지 핸드폰 같았다. 다음 서랍을 열었다. 그 속에는 물건들이 정리가 안 돼 엉켜 있었었다. 세 번째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많은 종이와 수첩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다음 아래로 손을 내렸지만 바닥이었다. 그녀는 다시 더듬어 맨 위로 손을 올렸다. 서랍 위는 넓은 면이었다. 민희는 그녀가 여태껏 만졌던 물체의 정체를 알아냈다. 바로 책상이었다. 천천히 책상 위를 손으로 훑었지만 그녀 손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책상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 손에는 잡히는 게 없었고 악취로 인해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그녀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서랍에 있는 물건은 어차피 가져가 봤자 읽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기에 일단은 원상태로 놔뒀다. 올라가는 길은 거의 기다시피 손발을 다 써가며 올라갔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은 그녀는 일단 샤워를 하면서 다음 계획을 구상했다. 샤워를 마친 뒤 그녀는 평소 일정대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내일은 머리가 아파도 지하실을 다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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