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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환 Aug 15. 2023

괴롭힘이라고요? 저도 피해자입니다!

고충처리 과정에서 당사자의 욕구를 맞추어보자

감기몸살이 심했던 A 씨는 3일간 병가를 다녀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신을 둘러싼 험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프지도 않은데 꾀병을 부린다’ ‘병가 동안 사고가 터져 복구하느라 죽을 X을 쌌다’는 등. 퇴근길에서도 동료들이 수군거리며 얘기를 해댔다. ‘○○에서 근무할 때도 꾀병 부리느라 병가 썼다며? 뭐 그런 인간이 다 있냐?’ 그러다가 알게 됐다. 상사 B 씨가 소문의 진원지라는 것을….     


B 씨를 만나봤다. “A가 병가 들어간 날 갑자기 내린 폭우로 밤잠도 못 자며 복구 작업했어요. 우리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자기는 병가라니. 그전에도 꾀병 부린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그깐 감기 좀 들었다고…. 생각할수록 아주 괘씸해 죽겠어요!’     


A는 결국 인사팀에 괴롭힘 신고를 했다. 회사는 A와 B를 분리조치 했다. 그러면서 B에게 당부했다. ‘2차 가해 염려가 있으니 절대로 A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후 회사는 사내에 마련된 ‘고충처리위원회’를 열었다.     


위원회가 열리는 날. 나는 A에게 물었다. “이 고충을 어떻게 해결되길 원하세요?”(외부고충처리위원), “저는 B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늘까지 단 한 차례의 말도 없었어요. 저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자신이 잘못됐다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법대로 처벌해 주세요”     


B의 얘기를 들어봤다. “A 씨 병가 날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아세요? 그걸 안다면 제게 그렇게는 못 했을 거예요. 너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더니, 삿대질해 대며 욕까지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제가 괴롭혔다고요? 피해자는 저라고요!”     


나는 생각했다. 피해자 중심에서 괴롭힘을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신고 이후 두 사람은 2차 가해 우려 때문에 서로의 얘기를 듣고 또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가 차단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던 생각 끝에,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당사자들에게 되물었다. “A님. 병가 첫날 피해 복구 때문에 밤잠도 못 자가며 복구에 투입됐다던데, 이런 사정 알고 있었나요? 당신이 B였다면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요?”, “B님. A님이 예전부터 꾀병 부린다는 얘길 어디서 들었나요? A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이 퍼지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이 사안은 B의 괴롭힘 행위가 인정되었다. A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며 병가에 들어갔다. B는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결과만 보면 아쉽다. 그렇지만 위원회에서 A와 B는 상대방이 하고 싶고, 또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내 질문을 받고 그들이 고개를 떨구며 생각하는 모습 속에서….     


‘저 사람 더는 믿을 수 없다. 말이 안 통한다. 정말 답답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관계가 악화하면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헐뜯는다.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신뢰는 결과물이다. 이를 쌓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신뢰하냐 못하느냐를 가지고 다투기 시작하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냈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실, 감정, 그리고 느낌을 제삼자를 통해 전달하고, 당사자들은 제삼자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실, 감정, 느낌을 알 수 있다면, 생각이 좀 변하지 않을까?      


서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심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자신들이 가진 인식의 틀을 아주 조금씩만이라도 바꾸는 것!    

 

이것이 고충을 듣고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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