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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환 Sep 13. 2023

어제의 괴롭힘 피해자, 오늘의 가해자가 되다.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신고하는 이유

주ㆍ야간 노인보호시설의 차량 운전 담당자.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애타게 일을 찾던 김 씨에게 새롭게 주어진 일자리다. 규칙적인 생활과 규정 준수는 물론이고, 힘든 일을 자처하고 나서는 김 씨는 새 직장에서도 ‘올해의 우수직원상’을 받을 만큼 듬직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센터로 날아든 익명의 투서. 거기에는 김 씨가 시설의 물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믿음이 컸던 만큼 배신도 커지는 걸까? 직원들은 한둘씩 김 씨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솔선수범과 도덕성, 윤리성을 절대 가치로 삼았던 김 씨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을 받았다. 등 돌리는 직원들을 붙잡고 싶었다. 직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던 김 씨, 평소 자신을 내켜 하지 않던 이 씨를 보고 마음을 먹었다. ‘이 씨가 평소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 이런 행동을 할 자는 이 씨밖에 없어!’. 그는 투서의 주체가 이 씨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자신은 이씨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를 했다.

      

회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위해 외부전문가를 선임했고, 조사결과를 심의위원회에 넘겨 의결을 거쳤다. 결과는 이 씨가 김 씨를 괴롭히지 않았다는 것.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김 씨. 이제는 센터가 인권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함께 근무한 모 간호사가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들은 회사에 나오는 게 두려웠다. 김 씨의 신고로 시청의 감사를 받았고, 김 씨로 인해 경찰서에까지 불려갔다. 법 없이도 살았을 직원들은 더는 못 참겠다며 회사 감사실에 김 씨를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했다. 김 씨로 인해 정상적인 근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신고 사건을 조사했고, 김 씨를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했다.

     

김 씨는 어쩌다가 괴롭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걸까?

      

첫째는 허위로 괴롭힘을 신고해도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명확한 근거 없이 이 씨를 신고했을 수도 있다. 벨기에, 노르웨이, 프랑스 등의 국가는 괴롭힘 신고를 위해 최소한의 합리적인 증거를 신고인이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괴롭힘에 대한 사법적 처벌을 보유한 국가(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우리나라, 루마니아, 버뮤다 등)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서유정, 2022).

      

둘째는 신고된 사건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아서다.김 씨는 내심 자신의 신고가 괴롭힘으로 인정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결과가 나오자 조사의 공정성 등을 문제 삼고, 이는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다수의 민원을 제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민원으로 진정 괴로웠던 동료 들은 그를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괴롭힘 신고 제도를 악용해 허위신고*하는 사례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서유정(2022)의 연구결과 피신고인이 스스로 허위 신고라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일이어서’였다.

      

셋째는 애착을 향한 욕구로 볼수도 있다. 김 씨는 귀하게 얻은 일자리에서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고 일했음에도 익명의 투서로 그가 쌓아왔던 중요한 가치를 잃게 되었다. 그러면서 직원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상태로 오랜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직장 생활이나 친구들, 가족에게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질병, 법적 소송, 가족 간의 불화 등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베셀 반 데어 콜크, 2020).

      

북을 두드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신문고처럼, 괴롭힘신고제도는 그동안 인권 침해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것을 ‘신고’라는 이름으로 말하게 한 제도이다. 그렇기에 신고가 있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서 끝나면 안된다. 신고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해결 방향은 무엇인지를 함께 찾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김 씨 처럼 어제의 괴롭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서유정(2022).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 신고 실태와 과제. 한국직업능력연구원.


2. 베셀 반 데어 콜크. 제효영 번역. 『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을유문화사. 2020.  


* 물론 없는 사실을 꾸며 하는 허위신고와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아 어느 정도 사실을 토대로 하는 신고는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유정의 연구에서는 제도를 악용해 신고하는 사례를 허위신고로 보았기 때문에 '허위신고'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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