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때 였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직전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던 장례식 일정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날.
그 날이 나는 제일 슬펐다.
가슴이 뻥 뚫린듯 지독한 상실감으로 하루하루 버틸때는, 교실에서 친구들이 하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 대화들조차 나를 아프게했다.
"오늘 우리아빠가 안깨웠자나 죵나 짜증나"
"있다가 아빠가 데리러 온대"
내 귀에 '아빠'라는 단어가 들려올때마다 나는 지긋이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꽤 오래동안 그랬다.
하루에도 수십번은 족히 들리는 그 흔하디 흔한 '아빠'라는 단어는 당시 나에게 어떤 말보다 아팠고, 날카로웠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말이 그렇게 아파질거라고.
1년 뒤, 수능이 얼마 남지않은 가을쯤이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애들아. 지윤이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중에 오면 잘해줘라."
(지금 생각해보면 비슷하겠지만,)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더 힘들 것만 같았다. 교복을 다려주고, 밥을 차려주는 존재. 그냥 너무 당연하고 큰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라니.
상상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버거웠다. 친구가 겪을 슬픔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 뒤 약간은 해쓱해진 얼굴로, 하지만 변함없이 밝은 모습으로 지윤이가 왔다. 친구들은 해맑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냈고, 같이 웃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주 빠르게.
소란스럽고 욕설이 난무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고3이었다. 수능을 100일쯤 앞두고 있었다.
당시 수능 100일반지를 사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나도 질새라 엄마한테 물고기 모양 금반지를 (기어이) 받아내었다.
나는 계속 지윤이가 신경이 쓰였다. 아무렇지 않아보이지만 아무렇지 않아보이지 않았다. 그럴리는 없었다.
지윤이도 내가 근처에서 빙빙 맴도는 걸 눈치챘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말미에 지윤이가 내 손가락에 물고기 반지를 보며 물었다.
"야. 이거 완전 예쁘다. 뭐야"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내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이거 엄마가 수능 백일반지로 사줬.."
여기까지 말했을때, 나는 그 말을 다시 내 입으로 집어넣고 싶었다.
굳이 내가 이 친구앞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지금 올려야만 했을까. 너무 후회스러웠다. 동시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말을 내뱉다 멈추고,
"미안해.." 라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뭘 미안하다고 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이 친구에게도 날카로운 단어였던게 틀림없다.
그리고 웃으면서 "못할 말도 아닌데 별게 다 미안하네" 라며 날 쳐다봤다.
마주친 지윤이 눈은 이미 벌게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눈을 마주하자 나도 걷잡을 수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지윤이를.
나는 그냥 냅다 껴안았다.
"그래도 미안해"
우리는 쉬는 시간내내 끌어안고 울었다.
친구들이 옆에서 미친년이라고, 얘네 진짜 왜이래..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들도 같이 울었다. 눈물은 삽시간에 전염되었다.
그리고 한바탕 눈물을 쏟고, 우리는 조금 치유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나누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공감, 아주 아주 깊은 공감은,
경험해본 자만이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보지 않고는, 당해보지는 않고는 그 무게를 상상도 못하는 영역이있다. 내가 그랬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깊은 공감을 해줄 수 없다 해도 괜찮다. 우리가 가진 감정은 모두 다르고, 때론 그 깊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때로는 스스로 감당해야할 몫이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