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g만큼의 애도
베란다로 나가자 시큰거리는 냄새가 훅 들어왔다. 처음 맡아보는 낯선 냄새에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뭐지?' 하는 고민도 찰나, 나는 머지않아 내가 방금 죽은 햄스터가 들어있는 상자를 살짝 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자 잠시 통풍이 잘되는 베란다에 그를 내놓은 게 화근이었다. 가을임이 분명한데도 왠지 푹푹 찌는 날씨가 걱정되어 바람이 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자 뚜껑을 비스듬히 열었을 뿐인데.
죽은 지 24시간도 채 안된 햄스터 사체에서는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났다. 간신히 잊었던 그리움이 기괴한 냄새가 돼서 돌아오자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데려온 지 1년도 채 안된 귀여운 녀석이었다. 한참 고민한 게 무색하게 이름은 너무 뻔하디 뻔한 '모찌'였으나 (햄스터 이름 중 5할은 모찌가 아닐까.) 내 나름의 사랑을 듬뿍 줬다. 그가 사랑이라고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작은 생명체를 진심으로 아꼈다. 외로운 순간에는 그 작은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간식을 건네주며 안부를 건네고, 보드라운 등에 종종 입을 맞췄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마음을 쏟았다.
바람이 차가워지던 며칠 전부터 골골해지는 눈치라, 덜컥 겁이 나 영양식에 이유식에 사육 환경까지 신경을 썼는데 하루하루 지나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혹여나 기력을 차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혹시나 죽으면 어떡하지. 한켠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심으로 며칠 내내 적색경보가 켜져 있었다.
내가 그 작은 것을 데리고 주말에 응급실을 찾아 나선 건, 문득 궁금해 찾아본 인터넷 정보 때문이었다.
햄스터에게 이런 증상이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하고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틀 안에 폐사할 수 있어요.
인터넷의 무서운 정보들과는 별개로 이 100g도 안 되는 깃털같이 가벼운 쥐 한 마리를 봐줄 응급실은 찾기 어려웠다. 수소문 끝에 앵무새를 전담으로 봐주는 24시간 동물병원을 찾긴 했지만 그 마저도 국내 정식의료기관은 아니었다.
그 밤에 작은 햄스터 한 마리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면서도 머릿속으로 맴도는 생각.
"이게 맞나?"
왠지 비극적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희극적으로 비춰질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 슬픔을, 이 다급함을 공감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우습게 여겨지는 것도 슬펐다.
별다른 치료 없이 비타민 주사 한방과 7만 원을 결제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하염없이 등을 쓰다듬으며,
모찌를 안심시켜보려 했다. 글쎄 녀석은 내 손길로 조금은 안도가 되었을까?
나는 다음날 소동물도 봐준다는 동물병원을 들렸다. 앳되보이는 수수한 얼굴에 의사 선생님이 모찌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럽게 케이지에서 그를 꺼내 요리조리 살펴봤다. 그 손길이 너무 진지하고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참으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하다. 기껏해야 평생 수명이 2년 남짓인,
이 작은 동물들을 맡아줘서, 진심으로 대해줘서 참으로 기뻤다.
모찌는 음. 괜찮을 것 같아요.
기력을 좀 차려야 되니 분유를 좀 줘보세요.
그 뒤로도 삼 일간 두 차례나 더 방문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나아지려는 기색 없이 그렇게 시간만 갔다.
다음날 다섯 시경. 나는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고 바로 모찌 집 앞으로 갔다. 평소라면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모찌를 불러본다.
잔뜩 잠에 취한 얼굴로 엉덩이부터 들이밀어보던 녀석인데, 오늘따라 전혀 기척이 없다.
모찌야?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았음이 분명하다.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적막과 왠지 다른 공기. 나는 그 녀석이 이미 죽었음을 직감한 채, 작은 나무집을 들어 올렸다.
평소처럼 쪼그리고 누워서 눈을 꼬옥 감고 자는 듯이 굳어져있다. 아직 남은 따뜻한 체온이 얼마 전까지는 숨이 붙어있었음을 증명한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들어 올리고 엉덩이 얼굴 머리에 붙는 톱밥바닥재를 살살 떼어준다.
털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단 말을 연신 토해낸다.
이 작은 것이, 이 어린것이 혼자서 며칠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기에 죽기까지 해야 했을까.
나는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이까짓 작은 쥐 한 마리에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애도하고, 어떤 장례를 치러줘야 하는지.
15년을 함께 산 반려견이 떠난 상황에 진행하는 장례식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손가락 질 받는데,
나는 어떻게 이 아이를 보내줘야 유난스럽지 않아 보일까.
지금도 전쟁통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는 이런 하찮은 고민을 하고 있는가.
작은 털뭉치를 바라보며, 나는 이런 '인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검색해 보니, 본인 사유지가 아닌 땅에 묻어줄 경우는 불법이고,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내다 버리면 된단다.
솔직히 그간 앞서간 많은 물고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변기에 버려지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질문은,
왜 어떤 생명은 장례식장과 묘비를 얻고, 어떤 생명은 쓰레기봉투 속으로 사라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정한 위계 속에서만 귀함과 하찮음이 갈린다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걸까.
모찌의 작은 몸을 바라보며, 나는 어쩌면 모든 생명이 같은 무게를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귀하고 하찮음을 나누는 건 결국 우리의 편의일 뿐, 애도는 그 무게와 무관하게 남겨진 자의 몫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너의 조그만 빈자리가 오래오래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