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일기

상상의 기우를 버리고 현실의 나를 믿자

by 버미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분명 준비하기 전엔 막연한 희망 따위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취업 판에 뛰어들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

'지금은 취준 초반인데 몇 년 후에도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지? 이게 진짜 내가 가야 할 길이 맞을까? 그럼 난 뭘 잘하지? 도대체 잘하는 게 뭐지?' 등등

내 자존감을 스스로 깎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취업공고는 계속 나오기에 무기력한 상황에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걱정투성이에도 일단은 도착했던 한라산 입구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냥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온전한 쉼이 될 수 없었다. 늘어진 육체와 다르게 머릿속에는 복잡한 고민이 실타래처럼 엉켜있었다.


어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불에 바짝 누워서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복잡한 고민은 여전히 안고서.

문득 앨범을 켰다. 요즘 코로나로 멀리 여행을 간지가 통 오래되어서 여행사진이나 보면서 추억팔이나 해보자라는 심정이었다.

삼각봉 대피소

이런저런 사진을 보다가 작년 2월 즈음에 친구와 등반했던 한라산에서의 추억사진을 보았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한라산의 사진을 보며 그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전날까지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미끄러져서 다치면 어떡하지? 가다가 길 잃으면 어떡하지? 조난당했는데 밤이 오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저체온증으로 큰일나면...' 미친 불안감에 사실 전날 밤 잠도 뒤척였다.


쓸데없는 걱정이 머리를 빙빙 맴돌았으나 이미 가기로 결정한 거 발은 떼야했다. 결국 왕복 7시간 30분에 걸쳐 무사히 정상을 찍고 돌아왔다.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혔던 백록담

갔다 와서 쓴 일기장엔 이런 문장이 쓰여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언제나 일어나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

항상 시작하기 전에 혹은 결과물에 도달하기 전에 고민만 왕창 쏟아놓다가 겁을 먹고 혼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나에게 한라산은 큰 용기이자 다짐이었다.

한 눈에 보이는 제주도

그런데 지금 한라산의 다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다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스스로에게 편지 한 장을 쓴다.


"묵묵히 걷다 보면 결국 정상은 나오더라. 한라산을 올라가기 전 겁부터 냈던 나를 되새기며 미리 하는 걱정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겁이 나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자.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뗐던 것처럼. 상상의 기우를 버리고 현실의 나를 믿자"

내려오는 산길

일단 걷고 보는거다. 그래도 고민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기에 고민할 시간을 따로 정해놓기로 했다. 6개월 후! 이 길을 계속 가도 좋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볼지는 이 날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의 나는 열심히 걸어 보는거다. 안 그래도 취준에 머리 쓰기 바쁜 뇌의 용량을 고민으로 뺏길 순 없다.


산과 다르게 현실의 정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어떤 정상을 맞이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나친 고민이 내 발길을 잡아 어떤 첫걸음조차도 걷지 못하게 하진 않겠다. 닥치고 일단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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