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는 자동차, 인간은 조종사: 우리는 세계를 여행한다

ChatGPT가 바꾼 인간의 사고와 기억,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방식

by 범진

이 글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해석합니다.



서문

ChatGPT는 2022년 11월에 등장했습니다.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인류는 이 기술에 상당 부분 적응했습니다. 지금은 하루 약 2억 명이 ChatGPT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화형 인공지능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ChatGPT라는 기술을 중심으로,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인간은 AI로 어떤 걸 얻고 잃어버리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ChatGPT를 타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1. AI가 대신해 주는 사고의 빈칸


생각은 꼬리를 물며 확장되는 과정입니다. ChatGPT와의 대화는 내가 시작한 생각을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전에는 혼자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해야 했던 사고를 이제는 인공지능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쉽고 단순한 생각조차 뇌에서 스스로 떠올리는 것보다 AI를 통해서 떠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습니다. AI는 내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장을 제안하고, 부족한 아이디어를 보완해 줍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활용을 넘어, AI가 사고 과정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계산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은행 이자를 계산하기 위해 복잡한 곱셈을 직접 해야 했지만, 이제는 계산기가 모든 연산을 대신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어적 사고를 할 때, 결론을 AI가 연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숫자를 다루는 계산이 아니라, 언어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언어적 사고가 단순한 수학적 연산을 넘어 훨씬 더 복잡한 의미를 다루기에, AI라는 도구는 계산기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닙니다. 본질적으로 언어는 인간 사이의 약속이자, 감정과 맥락을 담아내는 표현 수단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3년 동안 사람들은 ChatGPT와 같은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아직 닿지 못한 사고의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해 왔습니다. 보고서를 쓰는 이들은 초안을 훨씬 빨리 완성하게 되었고, 창작자들은 새로운 비유나 전개 방식을 얻어 작품을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사고 습관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대신, AI를 사고과정에 두는 방식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의 씨앗부터 열매까지 스스로 키워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줄기와 가지를 그려주고, 어쩌면 꽃도 펴주는 식으로 사고의 구조가 재편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건, 단지 옥수수를 키우겠다는 다짐 정도죠.



2. 생각하는 뇌와, 편리함의 대가


하지만 편리함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원래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I와 함께 생각하는 쪽으로 기능이 바뀌고 있습니다. 정답을 혼자 찾아내기보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이때 우려되는 지점은 사고 능력의 약화입니다. 사고는 본래 뇌에 큰 부담을 주는 불편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뇌는 조각난 생각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고,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며, 기억을 구성합니다.

ChatGPT와 같은 도구를 통해 생각을 진행하면, 결론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제 무엇을 고민했는지가 흐릿해집니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은 종종 가볍게 느껴집니다. 직접 씨름하며 복잡하게 정리한 결론과는 다릅니다.


이는 여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1년에 수십, 수백 군데를 다녀오는 것과, 몇 군데만 깊이 여행하는 것은 기억의 밀도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소수의 여행지가 더 선명하게 남는 법이죠. AI와 함께하는 사고도 비슷합니다. AI는 우리가 짧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그만큼 한 곳에 머물며 겪는 고생과 깊이는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겁니다.



AI 반대론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요즘은 AI 때문에 그 고생이 부족해졌습니다.”


AI 찬성론자:

“하지만 많은 곳을 경험하려면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가 필요하죠.

AI는 그 역할을 하는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AI는 이렇게 많은 곳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도록 완성된 길을 제공하는 가이드와 같습니다. ChatGPT 덕분에 인간은 손쉽게 정답을 찾아갈 수 있고, 더 넓은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은 약해지고, *깊은 사고 자체는 여전히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결정이나 직관적 판단은 인간이 직접 해야 하며,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일수록 AI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조금 기술적으로 이해해 봅시다.


* "깊다"는 것과 "많다"는 것을 이 글에서 다르게 봅니다.




3. 단어 하나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AI


ChatGPT는 언어를 다룹니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를 기반으로 사고합니다. 그런데 이는 인간의 사고 과정과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먼저 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합니다. 감정과 느낌, 상상과 예측은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언어는 이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즉, 인간의 사고는 언어 없이도 가능하며, 무수히 많은 요소들을 함께 엮습니다. 대상 하나를 떠올리면 관련된 감정과 사건이 연결되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까지 예측하기도 합니다.


반면 AI는 “단어”를 중심으로 사고합니다. AI의 한계는 단어 하나가 지닌 깊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AI는 수많은 문장을 펼쳐두고 그들의 연관성을 계산하는 데 능숙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문장에서 세계 전체를 상상하고, 단어 하나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시다. 한국인에게 이 단어는 단순한 음절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과 억눌린 감정이 응축된 언어입니다. AI는 “한”에 관련된 역사적 맥락이나 문장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가 담아내는 감정적·정서적 관계망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단어가 지니는 깊이는 언어로 해결하기 어려운 요소입니다.


AI는 언어를 계산적으로 다루지만, 인간은 단어 하나에서 세계 전체를 불러오는 감각을 발휘합니다. 이 차이가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앞으로 AI와 상호작용할 때도, 감각과 의미를 깊이 형성하는 영역만큼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4. 인간은 조종사, AI는 자동차


ChatGPT와 같은 AI는 우리에게 세상을 넓게 보여주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자동차는 엔진으로 우리를 멀리 데려다주지만, 어디로 갈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운전자의 몫입니다. AI는 양적 확장을 담당합니다.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정리, 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반면 인간은 질적 경험을 담당합니다. 단어를 압축된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정서를 통해 세계를 체험합니다.


사람마다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더 멀리 가고, 누군가는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AI의 양적 확장과 인간의 질적 경험을 잘 섞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이 방향을 향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AI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은 AI가 연결해 주는 지식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사고방식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무쪼록 AI와 함께하는 이 길 위에서,

인류가 더 깊고 멋진 존재로 진화하기를 바랍니다.


범진.


Illustrated by Alice Eggi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