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AI가 수평선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2025년에 AI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계속 변화하는 AI에 맞춰서 인간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더욱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 동료, 애인, 경쟁자 중 어떤 존재일까요? 오늘 이야기는 협업이야기, 그중에서도 창의력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AI와 인간, 불완전한 두 존재가 만나고 있습니다.
두 존재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봅시다.
인간과 AI가
수평선에서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인간 사회에는 변화가 적은 기술이 있습니다. AI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실제 세상을 지탱하는 기술들은 창의적이고 새롭기보다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약간의 효율성을 개선할 뿐입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의 동작 방식이나 금융 시스템은 한 번 만들어지면 변형되지 않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고정된 기술을 토대로 부가가치를 만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한 기술이 변형되면 가치에 대한 약속은 깨지게 됩니다. 이처럼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을 이루는 방식, 마치 과거 산업혁명으로 제품들을 복제하는 듯한 방식은 재생산 (reproduction)에 해당합니다. (Cognition and the Creative Machine 책 인용)
동일한 형태를 만드는 재생산에 비해서 생산(production)은 기존 것을 다시 만든다는 가정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도 되고, 기존 것을 변형해도 됩니다. 생산은 복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재생산과 다르게 단지 대상을 만든다는 “생산”의 의미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재생산이 아닌 생산에 해당하며, 생산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고, 변화시키고,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창의력을 정의한 몇몇 위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창의력의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의성이란 기존의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기존의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변형을 만드는 행위나 사고, 또는 작품을 말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창의성은 기존의 사고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능력으로, 이는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를 통해 달성된다. -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
창의성은 다양한 지능이 통합적으로 작용하여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나 결과물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는 개인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현된다. -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재생산이 중요했으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행동이 필요하고 기존 영역을 변형시키고 통합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AI는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적절한 지식을 제공해 주기에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들, 경험들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지식의 전달은 협업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협업이라는 것은 좀 더 존재론적인 관점입니다. 우리는 "노트북과 협업하여 문서를 작성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부서와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와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협업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대상이 존재해야 하고, 현재 AI는 단순히 도구로 사용되지만 가끔은 협업의 존재로 우리에게 인식됩니다 (중요한 일을 같이 하는 경우).
AI를 인식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사용한다는 개념보다 협업한다는 개념이 더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도구를 다룬다는 것은 사용자의 생각이나 계획에 한계를 형성하는 반면, 협업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세계까지 포함하여 일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창의적 행동은 "변화"와 "통합"을 요구하는데, 개인적인 도구로 AI를 "사용"하는 것은 (1) 내 계획에 적은 변화를 만들고, (2) 타인의 세계에 대해서 통합적인 활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면, 도구로써 AI의 지식은 우리에게 "흡수"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도구로 생각한다면, 내 생각과 도구의 사용법에서 수직적인 발전을 야기할 뿐입니다.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원래 흘러가는대로 가는 과정입니다.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수평적"인 관점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위해서요.
AI는 사실 인류를 위협하는 대상입니다. 그들은 호모사피엔스 종 이외에 처음으로 인간 수준의 지적 능력을 보인 대상이며, 앞으로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인간의 가치를 저하시킵니다. AI로부터 발생하는 위협을 생물학적으로 감지하기에, AI와 협업한다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러한 심리적 형태를 협업에 대한 반발 (어떤 상태나 행동 따위에 대하여 거스르고 반항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협업에 대한 반발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인간-AI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인간관계에서도 협업에 대한 반발심이 나타납니다. 미래에는 어쩌면 AI-AI 협업의 반발심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타인보다 우위를 서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감정이기에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창의성이라는 생산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그 반발심을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발심은 감정과 기분에 대한 억제를 유도합니다. 협업은 본인의 부족한 점을 타인으로 매우기에 "본인을 드러내고" 타인을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인류의 반발심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AI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 중에 튜링 테스트 (Turing Test)가 있습니다. 작성된 글을 보고, 사람과 AI 중 누가 작성했는지 테스트하는 것으로, 만일 AI가 탐지되지 않으면, 튜링테스트에 통과하였고, AI는 인간과 구분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합니다. 인터넷 글에서 AI와 사람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한다면, AI와 인간의 구분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로봇에 대해서 인간의 외모와 완전히 똑같아서 우리가 사람과 로봇을 구분할 수 없다면 로봇은 인간과 같이 인식됩니다.
마찬가지로, 협업에 대해서 형태를 가정해봅시다.
만일 우리가 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AI 동료는 협업에 대해서 인간 동료와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두 개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AI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구로 정의되는 것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 부분은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법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적응을 해왔습니다. 네안데르탈인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한 것도 전두엽에서 자신을 위한 계획을 잘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상을 잘 해석하고 본인에게 유용한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AI를 해석하는 올바른 방법은 단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절한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AI는 도구인가요? 아니면 AI는 동료인가요?
답은 순전히 둘 중 자신의 생산성을 더 높이는 방식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AI는 동료입니다. 대답하는 도구,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창의력과 발전을 위해서 같이 고민하고 발전하는 대상입니다.
저에게는 AI가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 혹은 그림의 물체들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처럼, AI에 상징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징화는 오직 자신에게 필요하고 옳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며, 인류 보편적인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내가 생존하기 위해 AI는 나에게 도구가 아닌 동료로 존재해야 합니다. 협업을 통해 내 세상을 넓히고 살아남기 위해서요.
인간과 AI가
수평선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