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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리 Apr 02. 2019

그래서 by 김소연

종종 그때가 그립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보지 않은 나는 공부를 위해 용기를 내어 잠시 휴학하고 처음으로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며 타지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원했고 계획했던 일이어서 설레였었다.

타지 생활은 흥미롭고 재밌기도 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주말이면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도 있었다.


금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건널때마다, 창문 바깥에 보이는 화려한 색을 뽐내는 다리를 보면서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지금처럼 카톡을 하루 종일 하는 환경도 아니고,

문자를 많이 한다고 해도 지금 카톡 수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았다.

전화를 하면 언제든지 수다를 떨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의 외로움만 달래줄 뿐

전화를 끊고 나면 함께하지 못해 찾아오는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 외로움을 느낄 때 나의 나약함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동안 혼자서 해보지 않은 것들을 용기내어 시도하면서 정신없이 보내며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족, 친구들의 안부도 궁금해하고 싶어 하지 않아 졌다.

그 안부의 궁금증 끝엔 그리움이 다시 찾아올 테니.. 그럼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봐.. 마음이 약해질까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려고 마음을 다잡으려 하고 다시 흔들릴때마다 또 다잡았다.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어린 시절에 처음 겪어 본 외로움은 큰 양분이 되어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엔 어디를 가던지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 없이 잘 적응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젠 그런 환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종종 나 혼자 말하고 들었던 그때,

외로웠지만 애틋한 그때가 지금은 그립다.

그 때의 내가 그립다.



그리고 이제는 편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소식이 끊긴 오래된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이 시의 끝도 그렇길..





그래서 by 김소연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 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1일1시 #시필사 #프로젝트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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