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때 알게 된 사람 중 인상 깊은 사람이 있었어요.
언어를 배우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20대였는데,
그중 30대 후반의 남자가 끼어 있었던 거죠.
저는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했어요.
“이봐, 너는 여기에 외국어를 배우러 온 이유가 뭐야?
직장에서 이걸 배우면 진급을 빨리 시켜주겠다고 한 거야?”
그러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어요.
”아니? 그런 건 없는데? 나는 지금 직장이 없어.”
“응?.. 그럼 이걸 배우면 뭔가 일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구나?”
“아니? 그런 것도 없는데?”
침묵이 흘렀어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죠.
당시 제 기준에는 30대가 돼서,
인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행동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뻘쭘함을 무릅쓰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이걸 대체 왜 배우는 거야?”
“별 멍청한 질문을 다 받는군. 당연히 재미있으니까 배우는 거지.”
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제가 벙찐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데, 그가 말을 이었어요.
“너희 한국 사람들은 참 신기해.
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봤는데,
그들이 물어보는 대부분의 질문은 이런 거더라고.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무슨 차 타요?’ 라거나,
‘당신 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는 어디예요?’,
‘수도의 집값은 얼마예요?’와 같은 것들이었지.”
저는 얼굴이 화끈해졌어요.
“그 누구도 나라는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삶에서 뭘 이루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어.
마치 학교와 직장, 자동차와 집에
세상 모든 가치와 행복이 담겨 있다고 믿는 것 같달까.”
그가 숨을 고르고는 말했습니다.
“정신 차려 Kim.
대학 졸업장이나 벤츠 자동차가 네 삶을 완성시켜주진 않아.
네가 삶에서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 넌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언젠가부터 모든 걸 판단하는 기준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 고급차를 모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였죠.
그를 위해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만이 중요했어요.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면 자책을 하거나,
스스로를 몰아세워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 애썼어요.
그런 상황에서 좋아하는 거라니?
그건 마치 회사에 막 입사한 자본주의 전사가 마우스를 내려놓으며
‘오늘은 좀 쉴게요. 제가 일 할 기분이 아니그든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국밥집에서 다대기 빼고 달라고만 요구해도
이모님의 눈총을 받는 한국 사회에서,
저 혼자 다른 길을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행복이라거나 삶의 의미 같은 것보다는
학업과 취업 등 ‘K-나이별 퀘스트’를 깨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미운오리새끼가 되지 않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잠시 미루고, 달려 나아가야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