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에 수요일에 도착했고 한 달간은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임시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보통 도착하면 출근까지 최소 2~3주는 주는데, 그 시간 동안 월세 살 곳을 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는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가 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든다. 시차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출근이라니... 뭐 어쨌든 그렇게 일정이 정해졌고, 그래서 목금은 연방 정부 관공서에 가서 SIN과 의료보험 카드를 만들고 억지로 시차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급하게 출근을 하라고 한 것이냐면, 당장 월요일은 컴퓨터 세팅이 되지 않아 재택으로 원격으로 계정에 접속해 회의 참여, 여러 가지 프로젝트 기본 자료 확인만 하라는 것이었다. 진짜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은 화요일이었다. 첫 출근날은 일단 회사 안내 데스크에서 매니저를 만나고, 그 매니저가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임시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는데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진짜 해외 회사 생활을 하게 되는 건가?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긴장이 돼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해서 10분 정도 있으니 매니저가 도착했다. 쿨한 척하면서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이동했다. 원래 회사 건물이 우리 회사의 상징적인 건물로 유명한데, 우리 사무실은 별도 건물이라면서 밖으로 향했다. 엇... 뭐야, 나 간지나는 이 건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별도의 회색빛 12층짜리 건물로 향했다. 에이, 김이 팍 샜다. 물론 나중에 이 건물이 더 좋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회사 오리지널 건물은 사실 많이 오래돼서 공간도 협소하고 나무 바닥이라 사람들이 걸을 때 끼익끼익 소리가 엄청나서 업무하기에 별로 좋은 곳이 아니었다.
여튼 와서 내 자리에 도착했고, 일단 프로듀서와 테크 리드부터 시작하여 여러 프로그래밍 팀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Hello, nice to meet you" 뭐 이런 뻔한 표현을 써 가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가며 인사하고 악수도 하고 했다. 최대한 쿨하게 하려고 했지만 사실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였지만 다행히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한 번 돌고 자리에 앉았다.
게임 회사에 새로 취업하거나 이직하면 가서 늘 그렇듯 가장 먼저 컴퓨터에 개발 환경을 세팅해야 한다. 이런저런 수많은 툴을 다운 받고 설치하고 필요하면 계정 권한도 받고, 마지막으로 우리 프로젝트 데이터를 전부 받아 개발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보통 한국 회사들은 상용 게임엔진인 유니티나 언리얼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자체 엔진을 사용하고 기타 여러 가지 툴도 자체적으로 만든 것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 세팅으로 엄청 오래 걸렸다. 전부 다 세팅하고 확인하는 데 꼬박 이틀은 걸린 것 같다.
개발 환경 세팅하는 틈틈이 근태 관리 프로그램에 대해서 익히고 사원증도 받아 왔다. 근데 사원증이라면 멋있게 회사 로고도 써 있고 내 사진도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 무슨 그냥 회색 카드에 스티커로 내 이름 붙여주고 끝이 아닌가. 하하, 이게 캐나다 스타일인가... 하지만 목에 걸고 다닐 필요도 없고, 마침 핸드폰 케이스 카드지갑에 아주 쏙 들어가니 소지하기는 편하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첫 출근은 인사하고 컴퓨터에 필요한 개발 환경을 모두 설치하고 회사 근태 프로그램 사용법 등등을 배우는 것으로 보냈다. 이것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갔다. 어차피 일은 하지도 못하니 매니저가 오늘은 적당히 5시쯤 되면 알아서 퇴근하라고 했다.
내가 출근했을 때는 2월이어서 오후 5시면 벌써 해가 질 무렵이었다. 캐나다의 겨울 해는 한국보다 훨씬 일찍 지는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임시 숙소 근처에 내려 임시 숙소로 걸어가려는 그쯤 갑자기 배에서 약간의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아마 하루 종일 긴장을 많이 했던 것이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눈길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첫날이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렇게 나의 첫 출근 날이 지나갔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현실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