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온 세상을 품듯이

누구에게나 위안이 되는 것들이 있다

by 불주먹

오늘은 안개가 살짝 낀 건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뿌연 달빛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진다.

환하고 청명한 달이 아니라 약간은 진한 노란빛의 반달.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 작게 심어놓은 작은 화분 하나처럼 수시로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려다, 문득 커튼을 치기 위해 바라본 창 밖에서 달빛이 온화하게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지금도 괜찮으니 이젠 마음도 조금 쉬게 해 주라는 듯이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동그란 곡선을 한 채로.


어제는 늦은 밤 육퇴를 하고 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두세 시간가량을 유튜브에서 퇴사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유튜버가 올린 영상도 영상이지만, 영상에 달린 수십 수백 개의 댓글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보고 사실 더 혼란스러웠다. 퇴사를 하고 나면 후회한다는 사람, 퇴사를 하고 나서 심한 우울감에 헤어 나오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 퇴사를 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오히려 그 용기가 멋있고 부럽다며 칭찬해 주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정답을 찾으려고 들어갔다가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물론 내게 당장 사직서를 던지고 나올 용기는 전혀 없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한 장씩 품고 다닌다는 그것이 나에게도 없을 리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직장 생활에서 왜 힘든지, 어떤 증상들을 앓고 있는지 토로하였다.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심한 무기력감과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그럼 퇴사를 하고 난 사람들은 행복해야 하는데, 또 한 편의 댓글에선 퇴사 후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사람들과, 퇴사를 후회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의 일과 직장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는지.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소득이 높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되 워라밸이 충족되는 직업들이다. 하지만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서 아주 소수의 비율일 것이다.


어릴 때 성함도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학원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매달 부모님께 사달라 하여 자주 읽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좋아하셨어서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아침 TV 프로그램을 즐겨보시는 엄마를 따라 KBS '인간극장'이나 '다큐 3일'같은 프로그램도 많이 보았었다. 이것들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느낀 것이 많았는데 그 속에는 쉽지 않아 보이는 어른들의 인생이 그려졌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그 든든하고 풍요로운 배경이 없이 맨바닥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하는 평범한 젊은이들,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아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노인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우리 이웃들.


인생을 알려면 아래를 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래를 보며 스스로 만족하자는 일종의 비겁함이 아니라, 다만 지금 이렇게 힘들고 아픈 것은 늘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에게 치유를 해주고 싶어졌다.

'더 나은 그 무언가'를 위해 달려가다가 점점 다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스스로에게 닦달하고 보채지 말고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 같다.


난 오늘 마음먹고 빨래를 세 번 했다. 아기 빨래, 어른 빨래, 친정 엄마를 위한 이불 빨래까지. 남편을 위해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고, 나를 위해 바닷가로 달려가서 바람을 쐬었고 지금 이렇게 나도 모르게 무거워져버린 마음을 헐어놓기 위해 글을 써 본다. 다행히도 내게 이 해방공간이 있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게 여겨진다.


지금도 어떤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그만의 작은 해방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마음속 작은 방 한 칸만큼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 역시도 그 스스로가 위안할 만한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강력히 믿어본다. 달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추며 품듯, 내 마음을 비출 그 무언가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로또를 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