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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May 10. 2018

당신은 홍대 몰카에 분노하셨습니까

어떤 보통의 것들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홍익대 미대에서 몰카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접했다. 미대쪽 누드크로키 수업에 참여한 남자 누드 모델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고 한다. 가해자는 얼굴과 중요 부위가 공개되어 있는 사진을 단톡방 등에 올렸고 그 사진은 워마드 등의 사이트에까지 퍼졌다고 한다. 피해자의 몸과 신체 중요 부위 등에 대한 품평이 낭자하였다고 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생활조차도 두려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두려울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이 사건은 명백히 천인이 공노할 범죄이며 이에 대한 공론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학생회와 성문제위원회의 대응은 미온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이에 대하여 분노를 금치 못하였고 비판의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페미니즘을 위하여 이런 일들을 벌였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하기도 하지만, 나는 폭력에 대한 성찰이 없는 이들이 벌이는 자칭 인권운동과 유대하거나 그 위에 공감을 얹을 생각이 없다. 그런 방식으로 얻어진 평화에는 그 어떤 의미도 없다고 믿는다. 폭력은 재생산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스탠스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으나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는 현재 워마드로 대표되는 그들의 태동시기부터 변치 않았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태클을 걸 사람도 있을 것으로 알지만 적어도 나는 이 생각에 대해서는 굳건하다.)     


이 사건은 명백한 범죄다. 그렇다.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한편 A 고등학교에서도 몰카 사건이 일어났다. 여학생들의 기숙사를 몰래 촬영하여 인터넷에 배포한 사건이다. 파일은 용량이 자그마치 5 기가바이트에 달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자가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가해에 동조하였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자는 미성년자였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이 몰래카메라가 언급된 게시글은 3년 전(2011년부터 꾸준히 찍혀왔다는 이야기도 있다.)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영상인것 같다. 혹은 그 시간동안 심지어 재생산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끔찍한 상상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은 얼마 전 열린 게시판에 공개되어 아주 작게 공론화되었다.     


사실 열린 게시판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즐긴 이들 중, 혹은 그것을 보고 지나친 이들 중, 그 누구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았을 뿐.          



홍익대학교 몰카 사건에 대한 기사는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포털을 가든 메인에 연일 걸려있고 실시간 검색어에서 가해 추정 집단과 해당 학교가 최상단에 고정되어 있다. 전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이 사건은 발생 직후 바로 적발되어 문제시되고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A 고등학교 몰카 사건은 공개 게시판에 걸린지 3년(혹은 7년)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를 알았음에도 그동안 단 한 번도 공론화되지 않았으며 학교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회의를 열었다는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 이슈를 전하는 페이지를 팔로우하지 않았다면 SNS에서조차 보기 힘들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A 고등학교 몰카 사건이 수면 아래 묻혀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홍익대학교 몰카 사건이 이토록 빠르게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것에 놀랐다. 모든 몰카 사건이 이렇게 헤드라인을 차지했으면 하고 기원한다.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홍익대학교 몰카 사건은 분명 천인공노할 범죄이다. 촬영자 및 2차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할 것이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할 것이며 미온적 태도를 보인 학생회는 각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A고등학교 사건 또한 천인공노할 범죄이다. 다만 천인은 공노하지 않았다. 천인은 그 외에도 많은 것들에 대해 공노하지 않았다. 여전히 텀블러나 웹하드에는 몰카 영상이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분노는 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킨 분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적다.          


그대는 홍익대 몰카 사건에 분노하였는가.     


인권과 성평등에 대해 당장 페미니즘의 깃발을 들고 뛰쳐나와달라는 말은 차마 당장은 못하겠다. 물론 나는 그래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이 너무 거창해서 본인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닌 종류의 무언가라고 생각하니까.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진보적 대안을 제안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이건 '강요받기 싫은 문제'정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대가 이 시대의, 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분노하자고 말하고 싶다.     


한국인 유출 몰카를 다운로드 받을 게 아니라, 몰카가 자연스러워서 더 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게 아니라, 탈의실을 어쩌구 하는 '유머' 게시글에 자기한테 영상 보내달라고 이메일을 달 게 아니라, 몰카 문제에 대해 시위하는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공유하면서 너같이 생겼으면 그런 거 시위 안 해도 될 텐데 하며 비웃을 게 아니라, 메갈새끼가 몰카 찍히는 예쁜 사람 질투해서 괜히 그런다고 할 게 아니라, 보적보니 뭐니 할 게 아니라, 몰카 그런 거 없는데 유난떤다고 프로불편러라고 할 게 아니라, 제발, 함께 분노하자. 이 모든 사건들에. 그대들이 홍대 사건에 대해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몰카 영상 보는 주변 사람을 제지하자. 몰카를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제기하자. 뚱뚱한 년들이 몰카 시위하는거 존나 웃기다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자. 함께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자. 그대가 홍대 몰카 사건에 대하여 분노하였듯이.


그대가 바로 천이다. 그대가 바로 인이다. 당신이 분노할 때 비로소 천인이 공노한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부탁드린다.




사실 이 글을 이 매거진에 올려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만든 매거진이자 브런치이고, 실제로 저는, 그런 일상에세이라는 태그에 적절할 만한 글들을 약간이지만 연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글은 지금껏 여기에 적어온 솔직한 일상글 (나름) 예쁜 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찌 보면 참 공격적이고 선동적인 게시글입니다. (사실 저의 원래 글 쓰는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건 이쪽이긴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카테고리에 적절치 않은 글입니다. 사실 크게 잘나지도 않은 글줄들이고 읽어주시는 분이 많아서 대단하지도 않은 브런치이지만, 늘 기대하고 읽어주시는 분들은 계셨으니 사과 드리는 쪽이 맞겠지요. 소소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오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곳에 이러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때, 문제로 인식한 것들을 깨뜨리기 위해 행동으로 옮길 때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된다고 믿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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