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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완전히 바뀐 그녀

미움받을 용기를 낸 그녀의 꿈

by 부론

서울 수도권에는 독서모임이 활발하지만, 시골은 그렇지 못하다.

소외된 지역에 독서 바람을 불어넣고자, 나는 모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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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책 모임을 한 지, 곧 1년이다.

멤버 중에 유독 마음 가는 한 분이 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는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간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으며,

이런 모임에 나온 것도 생애 처음이라고 했다.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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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분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계속하지 못하고 모임에서 나갔다.

이 분 역시도 그럴지 모른다는 나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뚝심 있게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서평의 수준도 점점 높아진다.

'퓨쳐셀프'라는 어려운 책을 5일 만에 읽어내고,

이것을 아들한테 자랑했단다.

무엇보다 8개월 전과 달리,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웃음꽃이 활짝 펴고, 상기되어 있었다.

심지어 독서모임을 다녀온 날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가슴이 너무나 쿵쾅거리고,

하고 싶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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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읽고 토론한 책은 10권 남짓이다.

이 10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그녀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주 잠깐 회사에 다녔던 것을 빼면,

평생 주부로 살아왔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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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지금 무엇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토록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없다.

많지는 않지만,

남편이 주는 생활비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중대 결심을 했다.

읍내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김밥 스무 줄만 싸줘 봐. 내가 시장에 가서 팔고 올게'

남편은 그런 아내가 신기하면서 의아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책을 읽고 조금씩 변해 가는 아내의 결심을 지지해 주었다.

남편 : '여보, 스무 줄은 너무 많으니까 일단 열 줄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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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싸 준 따뜻한 김밥을 보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김밥 한 줄 당,

서비스 초코파이 한 개와 맛있게 드시라는 손 편지도 썼다.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떨렸지만,

그녀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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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사를 하는 할머니 한 분이 한 줄을 사주셨다.

개시다.

감격스러웠다.

엇, 그런데 그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을 불러 모은다.

'여기도 한 줄 줘봐. 여기도. 여기도.'

헉, 이게 무슨 일인가.

남편에게 바로 전화했다.

'여보! 나 다 팔았어. 김밥이 부족해. 열 줄만 더 싸줘. 금방 가지러 갈게'

그녀는 그렇게 첫날,

남편이 싸준 김밥 열여덟 줄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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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용기가 충분하지 않은 걸세.
그래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미움받을 용기 2-


이 이야기를 듣는 데, 내 마음이 아려오면서도 뿌듯했다.

'세상에나, 내가 지금 이 분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책 몇 권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그녀가 얻은 것은 김밥 판 돈이 아니다.

그녀가 얻은 것은 성취감이다.

성취감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든다.

성취감은 능동적인 자세를 선물한다.

그녀의 다음 꿈은,

내가 떠난 뒤, 이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다음 날 이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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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독서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꿈, 다음 꿈.

하나씩 하나씩 모두 이룰 것이다.

불과 1년여 전,

다른 회원들에 비해 내세울 것 없는 스펙으로 주눅 들어 있던 그녀.

이제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명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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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할머니,

남편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길에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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