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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고 4개월이 지났다.
퇴직금을 두둑이 받아놓은 터라 돈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지출이 많다. 직장 다닐 때는 사 먹을 시간이 없어서 대충 끼니만 때웠는데 지금은 시간이 남아도니 가만히만 있어도 배고프다. 원래부터 입이 짧고 식탐이 거의 스님 수준으로 없지만 집에서는 다섯 걸음 남짓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지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달달한 게 자꾸 당긴다.
입맛에 중간이 없어 엄청 달거나 엄청 짠 자극적인 맛을 굉장히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물려서 뭐든 끝까지 먹지 못하고 반 이상을 남겨 눅눅해질 정도로 봉지를 벌려놓아 발에 차이다가 1-2주 뒤에 쓰레기통으로 직행된다. 양이 작게 든 걸 사기에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많은 걸 사기에는 버려지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 내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 또 갑작스럽게 나의 냄비근성이 드르렁드르렁 시동을 걸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 사람들이 어때요 너무 쉽죠 하며 밥로스 아저씨 급으로 올린 초보를 위한 쿠키 레시피들은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밀가루와 버터, 설탕을 휘리릭 뚝딱 섞은 다음 오픈에 넣고 기다리니 파는 것처럼 맛있는 쿠키가 되었다. 보기에도 굉장히 쉬워 보이고, 무엇보다 완성작이 SNS 중독자인 나에게 허세샷을 찍기엔 충분해 보였다.
집에 설탕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 마트에 갔는데 세상에 밀가루, 계란, 버터, 초콜릿 등 쿠키에 들어가는 재료비가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쿠키 몇 개 만들자고 몇 만 원을 쓰게 될 줄이야. 그래도 투자해보기로 했다. 베이킹이 나의 천성에 맞아 쿠키 가게를 오픈하여 쿠키 장인이 되고 돈을 긁어모아 고향에 금의환향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베이킹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고, 따로 공부하자니 귀찮아 검색하여 뜬 글 중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걸로 선택해 레시피를 따라 했다. 집에 저울이 없으니 나의 감각을 믿을 수밖에 없고 계량스푼도 없어 밥숟가락으로 대에에에충 양을 맞췄다. 레시피에서는 분명 쿠키 8개 분량의 레시피랬는데 막상 만들어보니 5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인심이 후한가 보다.
집에 오픈이 없어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다음 DSLR 사진기로 50장 정도 찍고 영혼을 담아 색감을 수정하고 별거 아닌 척 SNS에 포스팅을 하니 주변 반응이 뜨거웠다. 못하는 게 없다는 칭찬 댓글들이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그래 이 맛이지, SNS로 나 퇴사 후 이렇게 잘살고 있어요 보여주기용으로는 완벽하다. 뜨거운 반응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설탕 들어간 음식치고 맛없는 건 없고 거기에 버터까지 들어가니 혀가 춤을 춘다. 짜릿하다. 언제나 쿠키는 옳고 살찌는 음식은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 난 불행한 말라깽이 보다 행복한 돼지가 되는 걸 택했기에 이번 생은 모델이 되기 글렸다. 아쉬워라. 얼굴은 준비되어 있는데.
매일 공장에서 찍어내듯 쿠키를 만들고 뜯고 씹고 맛보고 하다 보니 바지 사이즈는 점점 엑스라지해지고 얼굴에는 버터끼가 반지르르 해져서 누굴 만나든 얼굴이 폈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맛있으면 0칼로리지만 아직 내 몸은 그 기적의 방식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수학적이다. 매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설탕 못 잃어 단 거 못 잃어.
방 안 가득 퍼지는 달달한 쿠키 냄새만큼 앞으로 나에게 생길 일들 또한 달콤했으면 좋겠다.
살 빼면 입으려고 4년 전에 산 미니 스커트는
결국
죽어서도 입지 못했다고 한다.
어때요? 참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