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Oct 27. 2023

강아지님 돌보러 비행기 타고 왔습니다

93

조카가 태어났다.

세상이 궁금했는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났다. 갑작스러운 출산에 오빠부부는 정신없었그로 인해 미처 강아지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


올케에게는 첫 강아지라 자식처럼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우고 있다. 그런 금쪽이 같은 강아지를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2동안 믿고 맡길 곳을 찾을 수 없던 오빠부부는 전전긍긍하며 똥줄을 타고 있던 순간! 갑자기 신의 계시처럼!!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놀고먹는 있는 늙은 백수동생이 생각났다 한다.


강아지를 애견호텔에 오래 맡기기도 염려스럽고 매일 산책을 시켜주고 이뻐해 줄 수 있는 호구애견보모로는 내가 딱 적격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어차피 나는 백수나부랭이라 딱히 하는 일도 없으니 아기도 볼 겸 산모도 볼 겸 하나뿐인 피붙이 오빠도 볼 겸 인천구경도 할 겸 강아지도 돌볼 겸겸겸 겸해서 인천 오빠집에 와 여행 온 듯 편하게 쉬고 가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미리 정해져 있던 약속들을 다 취소해야 되는 상황이라 조금 주저하던 나에게 먼 길 편히 오라고 친히 비행기를 끊어줌과 동시에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을 선입금시켜줬다. 친구들과의 약속보다는  가족일이 우선이니 다음날 바로 짐을  절대 돈때문은 아니다.



인천은 뭐랄까. 나에게 인천이라는 도시는 뭔가 세련되고 똑똑할 것 같은 대도시의 느낌이 강하다. 국제공항과 인천상륙작전, 디스코팡팡과 지상렬의 도시가 아닌가. 내려서 인천 미세먼지를 마시며 걷고 있는데 인도 쪽으로 뭔가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인천 두껍씨.

나는 내 갈길만 간다. 스고이 인천.

놀라운 사실은 인천 두꺼비는 인도로 걸어 다닌다.

역시 국제공항 도시답게 질서유지가 잘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오빠네 강아지를 지금껏 딱 4번봤다. 명절 때 강아지를 한두 번 데리고 내려왔는데 그때마다 강아지는 우리 가족을 어색해했다. 불안한지 불편한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밤새 이리저리 집안을 돌아다녔다. 특히 나를 싫어해서 내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억지로 잡아 쓰다듬으면 격렬하게 쌀알 같은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반항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고향집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개도 지역감정이 있나 보다.


강아지가 고향집에 있다가 떠나고 나면 매번 어디선가 이상야리꾸리한 냄새가 났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보면 이 개놈이 내 방 옷장 헹거밑에만 똥을 한 무더기 싸놓고 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걸 알고 미리 숙박 요금으로 한가득 보약을 만들어놓고 간 걸 보면 이 효자임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주인 없는 빈 집에 강아지 혼자 소파에 기죽은 채로 엎드려 있길래 안쓰럽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기도 해서 네이버로 강아지가 만져주면 좋아하는 부위를 검색해 살짝 다가가서 쓰다듬어주니,

으으ㅇ르ㄹ커컥.


으르렁 으르렁대.

만지지 마라. 손가락이 절단될지도 몰라요.


한참 멀리 떨어져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오빠말로는 산책을 너무 좋아해서 한 번만 같이 걷고 오면 나를 주인처럼 따를 것이라 했다.


혼을 빼줄 만큼 파워산책을 하러 배변봉투 챙기고 간식 챙기고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예쁜 턱받이도 입히고 나갈 준비를 했는데,

너랑은 안 가요. 우뚝.

시골 사람이랑 겸상 안 합니다.


몸무게가 7kg라서 힘이 어마어마하다.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강제로 끌고 가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간식으로 꼬셨다가 화도 냈다가 애원했다가 빌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의 진심 어린 간절함이 마음에 닿지 않아 결국 산책도 가지 못했다. 


강아지 마음이 편해야 올케 마음이 편하고 올케 마음이 편해야 애기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애기 마음이 편해야 오빠 마음이 편하고 오빠 마음이 편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결국 개님의 마음에 따라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책임감이 막중하다.


나는 동물애호가로서 강아지들을 무척 사랑하지만 이 집 강아지는 뭔가 조심스럽다. 오빠부부가 자식처럼 아낀다는 걸 알기에 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산책을 실패했으니 그냥 무작정 간식을 잔뜩 줬다. 버릇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당장 강아지의 사랑이 고팠다. 2주일에 걸쳐 나눠준다는 육포한봉지를 한 시간 안에 뚝딱 해치웠다. 그랬더니 조금 마음이 열렸는지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배가 불렀는지 슬슬 배변을 할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훈련이 잘된 강아지라서 꼭 패드 위에 볼일을 본다고 배변 천재견이라며 오빠가 매번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절대 배변 실수는 안 하니 더러운 꼴은 안 본다고 부분은 걱정 말라고 했다.

응. 선택적 배변 천재.

네 년한테 소일거리를 줘야지.

김 씨, 돈 받았으니 일하소.


배변 패드위치가 잘못 됐다고 생각해서 다시 정확하게 패드를 깔았는데

방광조준 실패.

이 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게 틀림없다.


오빠한테 말하니 낯선 사람이라 긴장해서 그런 것 같다고 칭찬해 주고 간식 주면 다시 제대로 배변한다고 했다. 그래서 또 우쭈쭈 놀아주고 간식 주고 했더니 이번엔 큰 신호가 왔는지 다시 방으로 쫄래쫄래 뛰어갔다.


몰래 벽뒤에 숨어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지 싶어 은근 기대하고 봤더니

김 씨, 엿 드세요.

금방 싸서 따뜻해요.




ㅇ.ㅇ????





끗.





+

못마땅.

눈치 드럽게 주네.



이쯤되니 집에 혼자 있는것보다

나의 존재가 강아지한테 더 스트레스를 주는것같다.



힝.






작가의 이전글 결혼식 답례품으로 민망함을 받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