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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09. 2023

최고의 진상을 픽해주세요

나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이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처럼 한국을 쫑낸 100명의 진상으로 출판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자 큰 야망을 품었었다. 혹 이게 독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프로듀서 101처럼 진상 101, 최고의 진상을 픽해주세요의 저세상 컨셉으로 글을 적어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합당한 소비자의 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당하는 나로서는 그냥 답도 없는 진상짓에 불과하다.


나는 직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두 명의 친구들과 매번 공유하는데 이번에도 진상컨셉으로 글을 쓴다고 취지를 밝히고, 나에게 들은 몇 년동안의 진상스토리에서 아직까지도 혀를 차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알려달라 요청했더니 서로가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나온 전설의 쓰리 탑 진상에 대해 적고자 한다. 




부동의 1위는 안하무인 진상 아줌마.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아직도 잊히지가 않다. 동네 커피숍에서 알바를 했는데 그날은 사장 없이 먼저 혼자 일하고 있었고 가게로 6명의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 자리가 많았지만 본인들은 꼭 창가에 앉아야겠다 하셔서 4명 앉을 수 있는 창가자리로 의자 2개를 들고 와서 다시 자리 배치를 해줬다. 그 당시 의자들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스타일의 아주 고오오오급 의자였는데 굉장히 무거워서 어질어질했지만 도와주지도 않고 빨리 해달라 나를 보챘다. 자리 정리 후 주문을 받았는데 본인들은 금방 점심을 먹고 와서 배부르다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6명이서 팥빙수 1개를 주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1인 1 메뉴가 적용되지 않는 시대라 그려려니 하고 원래의 정량대로 만들어서 서빙을 했는데 그중 가장 기쎄보이는 아줌씨가 다짜고짜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어머 이게 뭐야, 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 의사 사모님 모임이야" 도대체 팥빙수 1인분과 의사 사모님 모임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결론은 팥빙수 양이 작다는 거다. 그들은 6인분 같은 1인분을 대령하길 기대라도 한 모양이다. 3인분 같은 2인분은 들어봤어도 6인분 같은 1인분은 처음이다. 꼴랑 시급 3000원 받고 일하는 알바 주제에 감히 의사 사모님들이 드실 팥빙수를 이거밖에 주지 않느냐의 호통이었다.


난 그때 20대 초반이었고 가만히 있다가 뺨을 맞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본인들이 의사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의사 남편을 가진 아줌마들인데 뭘 그리 본인들이 대단하다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지. 그렇다고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팥빙수를 공짜로 퍼주는 가게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때마침 가게로 여사장이 들어왔고 분위기파악을 한 뒤 죄송하다 말하고는 (도대체 뭐가 죄송한 거지) 주방으로 호다닥 달려가서 정말 6인분 같은 1인분을 한 대접 만들어왔다. 그제야 아줌씨들은 알바 교육 잘 시키라는 개소리를 덧붙이곤 자기들끼리 하하 호호 거리며 웃음꽃을 피워냈다 그것도 3시간이나. 팥빙수를 먹고는 이가 시렸는지 따뜻한 물을 몇 번이나 리필했다. 아마 예전부터 사장이 이 아줌씨들한테 봉사하듯 퍼다 줬나 보다.


나는 너무 서러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냉장고 뒤에 서있었는데 사장년이 오더니 나의 어깨를 감싸 쥐고는 나지막이 나를 달랬다.


"원래 있는 것들이 더해. 어쩌겠니. 없는 니가 참아야지" 


이 사장년이 이걸 위로라고 하나.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푼수끼가 다분한 사장은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줬다 다만 적절한 단어의 사용과 분위기 파악을 못했을 뿐.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오는 '의사모' 진상들에게 가게에 있는 모든 걸 공짜로 왕창 다 퍼줬다. 사장의 위로처럼 없는 내가 있는 것들한테 잘해줘야지 싶어서.




대망의 2위는 무식한 건달언니. 이때도 내가 커피숍에서 일할 때인데 하루는 자주 오는 동네건달오빠가 처음 보는 건달언니를 데려왔다. 언니는 오자마자 담배를 폈고 카페가 금연구역이라 나는 음료를 만드는 도중에 뛰어나가 정중하게 담배를 꺼달라 했다. 그랬더니 건달언니가 나를 쏘아보고는 커피랑 담배는 세트메뉴인데 (응?) 왜 못 피게 하냐고, 여기 어디 금연구역이라 적혀있냐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나는 카페 밖에 설치되어있는 보드판에 금연이라 적혀있다고 알려줬고 언니는 씩씩거리며 확인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벅차고 나갔다가 금방 들어와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금연이라고 적힌 건 없다며 건방지게 어린 게 거짓말한다며 노발대발을 했다. 밖에 적힌 NO SMOKING을 못 알아보셨나 보다. 그게 왜 금연이란 뜻이냐며 한국말로 또박또박하게 적어놔야 사람들이 알 거 아니냐며 (.. 니만 몰라) 커피숍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같이 온 건달오빠는 쪽팔림을 아는지 그만하라며 대신 사과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둘 중 한 명은 정상이니.


시킨 음료를 5분 만에 마시더니 카페 정문 앞에 서서 둘이 맞담배를 피고는 바로 떠났고, 빈 음료잔을 치우러 그 자리에 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서있었다. 건달언니가 테이블에 본인 분노를 적나라하게 표출해놓고 간 것이다. 음료잔에는 아까 피다 만 담배가 돛단배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일부러 담배 한 개비 한 개비를 손톱으로 잡아 뜯어 테이블 위 소파 위 여기저기에 뿌링클 마냥 뿌려놓았다. 브라보. 나를 엿먹이고자 하는 정성이 대단했다. 그리고 정문에 적힌 NO SMOKING 글자를 담배로 지지고 갔는데 나를 지진게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긴 했다.


그로부터 십몇년이 지났고 어학원에 일하면서 비슷한 학부모를 봤다. 원어민 선생님이 자녀의 시험지에 적어둔 Re-test를 보고는 왜 한국말로 '재시험'이라 안 적어줘서 미리 재시험 공부도 못하게 했냐며 원어민 선생님한테 한글을 가르치라 나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그분께 물어보고 싶었다.

" 혹시.. 그때 건달 언니?"   

어느새 학부모가 되셨네요. 무식한건 여전하시네요.




3위는 뻥튀기빌런가족이다. 내가 잠시 두 달 동안 일했던 칸막이 형태로 된 맥주집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날 손님으로 한가족이 왔다. 가게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이 가족 분위기는 쎄했다. 아빠엄마유치원생아들 3명이었는데 주문은 무난하게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 아들이 지루했는지 징징거리기 시작하자 엄마는 갑자기 기본안주로 나온 뻥튀기 과자를 바닥에 한두 개 던지더니 (응??) 아들보고 그림자놀이처럼 밟으라고 했다. 아이는 폴짝폴짝 뛰어서는 한 발로 과자를 바그작 밟아 뭉개면서 신나 했고 더더더 해달라며 엄마를 보챘다. 한두 개 던지던 엄마는 한주먹 가득 움켜쥐고는 눈 뿌리듯 하늘을 향해 높게 던졌고 바닥에 뿔뿔이 흩어진 과자들을 향해 아이는 괴성을 지르면서 밟아대기 시작했다


참으로 경악스러운 장면이다. 사장도 없고  나랑 주방이모만 있던 터라 어쩔까 고민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다른 손님께 방해도 되고 음식을 이런 식으로 바닥에 뿌리면 안 된다고 하니 조용히 하겠다 하시고는 과자를 리필해달라 했다. 불안 불안했지만 안 뿌리고 안 밟는다고 했으니 믿고 리필해줬는데 이것들이 안 뿌리고 안 밟는 대신 서로를 향해 과자를 던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총알을 받아라였나 뭐라나. 정말 그들의 말처럼 칸막이 위로 과자가 전쟁터 총알처럼 슝슝 날아다녔고 보다 못한 주방이모가 한번 더 가서 주의를 부탁했더니 자기들 술맛 떨어져서 더 이상 못 있겠다고 계산하고는 애엄마가 굳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긴 서비스가 엉망이네 애가 그럴 수도 있지" 본인 정신세계가 엉망인 건 모르나 보다. 애가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니가 문제란다. 그날 과자 부스러기를 청소하는 데는 1시간 걸렸지만 부서진 인내심을 수습하는 데는 하루가 걸렸다.




대학생 때부터 작년까지 계속 일을 해오면서 수백 명의 진상들을 만났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할 정도로 상식의 선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지금에 와서는 웃음소재거리나 안주거리로 나도 그들을 오징어처럼 계속 씹어대지만 한번 진상은 영원한 진상임을 알기에 지금 어딘가에서도 계속 그렇게 남 피해 주면서 살고 있을 거란 생각 하면 소름이 돋는다.


진상들에게 삼진아웃제도를 실시했으면 한다. 버릇 못준다고 분명 계속 진상짓하고 돌아다닐 텐데 진상짓 3번 하면 아예 바깥출입을 못하게 하는 법안이 나온다면 이 세상 모든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



서비스가 그렇게 불만이면

그냥 집에 처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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