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인 줄만 알았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내로남불 신조어처럼 내가 하면 똑똑한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남이 하면 진상인사상을 가진 학부모를 여럿 만났다. 난 웬만하면 다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좋게 좋게 끝내려는 비둘기급 평화주의자인데 가끔 이건 아닌데 싶은 빌런들이 꼭 어디에나 있다.
고용된 8시간만큼에 대한 노동의 대가로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감정까지 고용된 건 아니다. 계약서 어디에서도 '을은 진상이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기어이 내어주시오' 목록은 없다. 학생과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정말 많은 못볼꼴 험한 꼴 희한한 꼴을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봐왔다. 동종업계 사람들이 아니면 절대 믿을 수 없는 레전드 갑질진상스토리가 수두룩 하며 친구들에게 말해줘도 믿지 않는 눈치다. 답답하다. 진짜 있었던 일인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주옥같은 진상의 갑질 에피소드를 풀자면, 집안에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 결석을 해야 한다고 보강수업을 요구했다. 학원 방침상 학교행사, 장기간 여행, 집안 경조사는 보충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물었더니 친척 중 한 분이 위독하셔서 가봐야 된다고 했고 결석으로 인정돼서 보강 스케줄을 잡아줬다. 보강 선생님이 따로 계심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수업에 결석을 하니 꼭 원어민이 직접 보강을 해달라고 특별히 요구했고 하루를 빠졌으니 1시간 풀로 채워서 해달라 했다. 1시간짜리 단체수업을 1대 1로 진행하는 거라 1시간까지는 걸리지 않고 40분이면 될 거라 했더니 무조건 1시간 꽉 채워서 해달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에 그냥 알겠다 했다.
나중에 다른 아이에게 슬쩍 그 친구의 결석 사유를 물어보니 집안일이 아니라 친구 생일파티 참석 때문에 결석했다고 했다. 부글부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요구가 통해서 기분이 좋았는지 다른 학부모한테도 이렇게 요구하면 다 해준다식의 자신만의 쌉노하우를 소문내 그 뒤로 비슷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누구누구 엄마는 해줬다는 데로 시작하는.2차 부글부글.
또 한 번은 55분 수업에 본인 자녀가 다른 일정이 겹쳐 3분 일찍 마쳐야 된다고 해서 미리 담임선생님께 알려드렸다. 그렇게 며칠을 지난 후 전화해서는 본인 자녀가 없는데 왜 진도를 나가냐고 화를 냈다. 3분씩 5일이면 15분을 손해 보는 건데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 따지셨다. 정말이지. 어후. 이하생략.
그리고 어느 날은 학생이 수업 도중에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간다고 나왔는데 10분이 돼도 교실로 돌아가는 게 보이지 않아 화장실로 가보니 아이가 없었다. 급하게 어머님께 전화하니 아이가 그냥 수업 듣기 싫어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집에 왔다고 한다. 겉옷과 가방은 교실에 둔 채. 학원을 무단이탈한 자녀를 학원에선 없어진 줄도 몰랐냐며 이건 신고할 문제라면서 되려 화를 냈다. 기어이 원장님과 통화하고는 앞으로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하겠다 약속과 사과를 받아냈다. 과연 배탈이 났다며 화장실에 조금만 앉아있겠다고 거짓말을 한 아이를 믿은 우리의 잘못일까 그냥 수업 듣기 싫다고 말도 없이 집에 간 그 아이의 잘못일까.그 이후로 나는 배탈 난 학생이 있으면 한동안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생생한 사운드를 들으며.
하루는 화가 난 외부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학원 가방을 멘 학생 2명이 길 가다가 자기 차 쪽으로 침을 뱉었다면서 학생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다짜고짜 화를 버럭 냈다. 그래도 그분이 미래의 고객이 될 수 있음으로 최대한 친절하게 혹시 어떤 아이들인지 알 수 있을까요 되물었더니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아냐고 그냥 학생들 전체적으로 제대로 교육시키라고 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이해심 부족인 건지 공감능력의 결여인 건지 이런 전화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셔틀 기사님이 학생들이 없는 쉬는 시간에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고 컴플레인, 주말에 셔틀 기사님이 깜빡이 없이 차선변경을 해서 놀랬다고 컴플레인, 학원 가방을 멘 아이가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했는데 아이가 부모님 전화번호를 말하지 않고 있어 학원으로 연락했다며 다짜고짜 컴플레인.
아주 무슨 내가 동네북이여.
내가 경영관리직에 있다 보니 대부분 걸려오는 전화는 내가 제일 먼저 받는데 대체적으로 걸려온 전화는 화가 난 사람들이 많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는데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갑질은 대처방안이 없다. 그냥 묵묵히 듣고 있을 뿐. 본인의 하루가 힘들었다는 이유로, 자녀가 짜증 낸다는 이유로, 담임교사의 말투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숙제가 많다는 이 이유 저 이유로 나를 감정쓰레기통 취급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본다. 정말 그런 전화 한 통 받고 나면 귀가 뜨겁고 웽웽거린다.
학원버스 문제든, 교우관계든, 숙제든, 학생의 기분이든 뭐든 그냥 모든 건 내 책임이고 내 잘못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눼눼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나 하나가 납작 엎드려 죄송하다고 굽신굽신 하면 모두가 편하다. 결국 진상들은 본인 기분 나쁜 걸 어딘가에는 풀어야 하고 보상받아야 하며 총알받이인 내가 대표로 따발총에 맞아 그날 하루 전사하면 끝이니까. 그리고 다음 날 없었던 일처럼 다시 소생하여 또 총에 맞으면 된다.
전화기 너머로 얼마나 많은 귀싸대기를 맞았는지 셀 수도 없다. 앵무새 마냥 같은 말을 수 없이 반복하며 나의 멘탈을 폭탄주처럼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었고 1절 2절을 넘어서 50절까지 계속 이어가는 진상도 꽤 있었다. 이쯤 되면 촉이 생겨 진상 판독이 가능해지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첫 번째 숨소리에 바로 구분이 된다. 삐용삐용 이것은 진상갑질콜이니 마음의 준비하시오 혹은 곧 뺨을 맞을 테니 뺨을 미리 대기하시오.
갑질썰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들의 컴플레인 내용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주일에 한 명은 꼭 진상짓을 했는데 한 달에 최소 4명 일 년에 50명가량, 내가 일한 6년의 세월을 꼽히면 300명의 진상을 만나서 부서지고 깨지고 울고 취하고 견뎠다. 퇴사한 지금까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의도가 뭐였는지. 정말 분풀이었을까.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냥 사과를 꾸역꾸역 받아냈고 앞으로 주의시키겠다 여러 번 고개를 조아려도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여러 차례 전화해서 본인 스트레스 풀릴 때까지 고함 질렸다. 은행나무침대의 황장군처럼 무릎 꿇고 천년동안 반성하길 바라시나 싶기도 하다.
갑질하는 진상들은 대부분 본인들이 낸 돈의 가치를 몇 배로 뻥튀기하여 생각하고 그에 응당한 서비스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건 본인입장만 생각한 단순한 생각이다. 가령 내가 한 달 월급이 300만 원이라 친다면, 하루에 대략 13만 6363원, 이걸 시간당 계산하면 17000원 꼴이다 거기에 내가 관리하는 인원이 350명이니 그 학부모가 나에게 주는 돈은 1시간당 49원인 셈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이지만 마치 내가 학원비 30만 원을 전부 다 받아가느냥 본인들이 내뱉는 언어폭력과 감정폭탄은 당연한 듯 대하니 나 또한 내 입장에서 계산해보면 그들은 내 살림에 1도 보태주지 않는다. 50원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보세요들. 하루에 49원 주면서 그렇게 사람 막 대하지 마세요. 본인 혹은 당신의 남편, 당신의 부모님, 당신의 자녀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을일 테니. 분명 그대로 돌아옵니다. 뺨 준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