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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06. 2023

온 세상의 금쪽이들

난 나의 금쪽이들을 사랑한다. 

특히 내가 만난 금쪽이 오형제는 평생 잊지 못한다.


화목 수업시간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간식을 챙겨 먹지 않으면 중간에 배고파 수업을 하기 힘들어 매번 집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가곤 했다. 물론 코로나전 이야기이다. 앞교시 수업을 마치고 자리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은 일찍 나의 교실로 와 내가 뭘 먹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항상 뺏아먹었다. 초반에는 빵, 초콜릿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가서 다 뺏겨버리자 나도 잔머리가 생겨 아이들이 싫어할만한 어른스러운 토속적인 간식만 들고 갔다. 하루는 홍삼 젤리를 들고 갔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아빠 샴푸맛이 난다며 먹기를 거부했지만 Lily만은 달랐다. 


Lily는 3학년 여자아이로 딱히 식탐이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먹는 건 뭐든 달라고 했다. 홍삼젤리 마저 뺏기자 나는 밍밍하기로 소문한 두부칩을 들고갔다. 아이들은 강아지간식이라 나를 놀려댔지만 Lily 만큼은 한 움큼 두 움큼 뺏아가서 아주 맛있게 잡쉈다. 도저히 이대로 뺏길 수만은 없어 아이들이 싫어하는 간식을 검색했고 (나도 참대단해) 마침내 Lily가 절대 손댈 수 없는 강력한 놈을 찾아냈다.그것은 바로 생당근. 튀기지도 삶지도 굽지도 볶지도 않은, 땅에서 바로 뽑은듯한 생생생당근을 굵직굵직하게 썰어 Lily 보란 듯이 떡하니 꺼냈다.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먹어보라고 들이 내밀 었는데 아이들은 냄새만 맡고도 기겁을 했다. 


옳다쿠나 이거다.


Lily도 처음에는 싫어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손을 내밀었고 토끼처럼 앞니로 갉아먹듯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의외로 한 개를 다 먹었지만 더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정말 오랜만에 나는 여유를 즐기며 평화롭게 간식을 먹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Lily어머님께 전화가 왔고 어머님은 나에게 당근을 어디서 샀냐며 Lily가 학원에서 당근을 먹어본 뒤로 집에서 생당근을 찾았다고 한다. 


이게 뭔 일이야. 

제주산 당근이라 알려드렸고 이때까지 해프닝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이 한참 웃으시고는 앞으로 간식으로 Lily가 잘 먹지 않는 숙주나물, 연근, 고등어를 먹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난 그날로 학원에서 간식을 끊어버렸다.




Brian은 초등학교 5학년치고 덩치가 큰 아이였다. 부모님이 편의점을 운영하셔서 항상 가방에는 먹을 간식거리가 가득했고 쉬는 시간마다 끊임없이 뭔가를 먹고 있었다. 하루는 파전을 먹을 거라며 나에게 자랑을 했다. 나는 그냥 집에 가서 먹을 건가 보다 생각하고 그려려니 넘겼는데 원어민 교실로 이동 후 3분 뒤에 원어민이 허겁지겁 나에게 자기 교실로 와보라며 다급하게 요청했다. 가보니 Brian이 정말 파전을 먹고 있었다. 


진짜 리얼 찐 파전. 

피자만큼 동그랗고 큰 파전. 거기에 간장까지 추가요. 


내가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할머님이 파전을 구워서 가방에 간장이랑 젓가락까지 챙겨주셨다며 쉬는 시간 5분 안에 다 먹을 수 있다며 쭈압쭈압 야무지게 먹었다. 난 저러다가 막걸리까지 꺼낼까 두려워했지만 다행히 콜라로 입가심하더라. 그 후로 나는 항상 Brian가방에 어떤 간식이 있을지 궁금해했고 파전 이후로 회오리감자, 닭꼬치 그리고 노가리까지는 들고 왔지만 아직까지 파전만큼 파격적인 건 없었다.




Max는 3학년 짜리 조용한 남자아이였다. 항상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움츠려 있는 나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Max가 메뚜기었나 귀뚜라미었나 곤충채집통을 들고 왔는데 그날로 모든 아이들의 관심이 Max에게 집중되었다. 그때 Max는 관심의 참맛을 알아버린 게 틀림없다.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기분이 좋았나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날 처음 Max의 이빨을 본 듯하다. 항상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이였는데 그날의 관심이 Max의 건치를 활짝 오픈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Max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질주해 버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뭔가를 하나씩 계속 가져오기 시작했다. 첫날의 메뚜기로 시작하여 매미, 도마뱀, 햄스터, 거북이를 거쳐 결국에는 물고기까지 들고 오게 되었다. 물이 한가득 든 미니어항을 들고 조심조심 살금슬금 캣워크를 하며 걸어오는 모습이 짠했지만 더 이상 놔둘 수 없어 어머님께 전화하여 들고 가주십사 부탁했고 앞으로 학원수업에 필요하지 않은 건 들고 오지 말라 금지했다. 그날 그 말과 동시에 Max의 이빨은 다시 굳게 잠겨버려 영어학원임에도 불구하고 Max와는 눈빛으로 대화했다.




학원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코딱지를 파서 먹는 아이들을 꽤 봤다. 사실 나도 어릴 때 호기심에 먹어본 적이 있는터라 딱히 더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뭐 한국아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다 맛보는 공짜 스낵이 아닌가. 하지만 원어민들은 아이들의 코딱지 발굴 및 시식의 행위가 상당히 불쾌하고 이해 못 할 행동이라 생각해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누가 코딱지를 먹었는지 일러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아이가 Dana라는 초등학생 2학년 여자아이이다. Dana는 상습적으로 코딱지를 먹었는데(어머님도 알고 있고 여러 차례 아이에게 이야기했다고 함) 선생님 눈을 피해 눈치껏 먹는 걸 보니 그 짭짭하고 콤콤한 맛을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보다 못한 원어민이 아이가 민망하지 않게 살짝 티슈 한 장을 뽑아 책상 위에 올려줬다고 한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수업 55분 내내 코를 파고는 채굴한 코딱지를 티슈에 열과 행을 맞춰 정성스럽게 묻혔고 수업이 마친 뒤 코딱지가 질서 정연하게 묻어있는 티슈를 반으로 고이 접어 가방에 가지런히 넣어갔다고 한다. 마치 코딱지 컬랙션인 거 처럼 아주 소중히 고이 접었다 한다. 


원어민은 자꾸 Dana가 나중에 출출할 때 먹으려고 코딱지를 모아갔다고 주장했다. 코딱지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뉴스기사가 있다고 코딱지가 천연백신이라 했더니 자기는 일찍 병들어 아파 죽으면 죽었지 코딱지를 절대 먹지 않겠다고 오바육바를 했다. 그 원어민은 어느덧 한국온지 4년차가 되었고 이제는 그려러니 하는 경지에 올랐다.



이 아이들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가끔씩 생각난다. 그 당시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정말 순수했고 사랑과 관심을 주는 만큼 잘 크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과연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비록 돈을 벌고자 선택한 직업이지만 아이들한테만은 진심이었다. 나 하나로 그들의 세상이 달라질 수 있고, 영어을 아예 싫어하게 만들거나, 사랑하게 되어 더 큰 꿈을 꾸게 만들 수도 있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은 최선을 다했다. 난 나이가 들어 서서히 아이들을 잊어가지만 아이들에게는 오랫동안 유쾌한 선생님으로 남아있고 싶다.



늦잠으로 화장을 못한 날 7세 Jenny가 나에게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Teacher, You face why?

선생님, 니 얼굴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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