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 시작했더니, 조회수가 내 몸무게랑 똑같아요

by 김분주


마흔이 되었다.


내가 영원히 20대일 줄 알았다.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태도도, 이건 한 번쯤 해봐야지 하는 성격도 여전하다. 다만 요즘은 계단을 오르기 전부터 숨이 차고, 아직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이미 지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체는 확실히 늙고 있고,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정확히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 아직 저러고 있네” 같은 뉘앙스가 섞여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회원가입 창에서 연령대 ‘40대’에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사람을 조용히 서글프게 만든다. 아무도 나를 때리진 않았는데, 기분은 맞은 느낌이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나의 마지막 30대였던 2025년은 유난히 바빴고, 다행히 무사히 잘 흘러갔다. 에세이 한 권을 냈으며 생각보다 빠르게 2쇄도 찍었다. 물론 그 2쇄가 지금은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도 ‘작가’라는 단어는 남의 옷 같고, 가끔은 책을 냈는 사실도 잊고 산다. 결론은 하나다.



제발 2쇄 다 팔리게 해주세요.

자존심 같은 건 필요 없고, 숫자로 나를 돈쭐 내주세요.



어느 날 문득, 마흔이 된 2026년은 진짜 좀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굉장한 계획을 세우자니 귀찮고, 변하자니 더 귀찮았다. 그래서 타협안을 찾았다. 나혼자산다 같은 관찰 예능처럼 브이로그를 찍으면,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는 좀 계획적으로, 억지로라도 더 신나게 살지 않을까. 가만히 누워 있어도 기승전결이 생기고, 라면을 끓여도 뭔가 대단해보일테니까. 브이로그는 다짐이 아니라 연출이다. 재밌게 살겠다는 의지를 편집으로 대체하는 가장 현대적인 자기기만이랄까.


크으으 나 쫌 멋있는데?

아엠 영포티...♡



하지만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일기장에도 예쁜 글씨를 쓰고 싶어서 마음에 안 들면 몇 장씩 찢어버리는 내가, 과연 카메라 앞에서는 꾸밈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혼자 툭툭 내뱉는 남이 들을까 부끄러운 원초적인 모욕들, 지나가는 잘생긴 남자를 향한 음흉한 흑심 그리고 아무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남의 뒷담까지. 이걸 전부 카메라에 담는다는 건 합의금을 뜯어내기 딱 좋은 증거를 스스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뭐 어때.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해봐야지.



먹방 컨셉을 할까 생각했지만, 나는 쩝쩝충에 가까운 편이고 얼굴도 음식의 맛을 살려주지 못한다. 누군가는 먹는 걸로 식욕을 자극한다지만, 나는 반대로 상대방의 식욕을 떨어뜨린다. 이 얼굴과 이 소리로 카메라 앞에서 먹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선택이다. 여느 브이로그처럼 감성있게, 침대에서 기지개를 시작으로 요가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욕조에 거품을 풀거나 온갖 산해진미를 해먹는 성공한 40대 컨셉을 하기에,


스트레칭 안해요.

욕조 없어요.

산해진미 해먹을 돈 없어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접이식 식탁을 꺼내기 귀찮아 바닥에 놓인 음식을 거북목으로 숙여 두루미처럼 쪼아 먹는 모습과, 스트레칭 대신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관절이 굳어가는 소리뿐이다. 힐링도, 감성도 아닌 처참한 40대의 생존 다큐가 될 것 같다.



보자보자

그럼 대체 어떤 컨셉이 좋을까.


짠내 나는 직장인 컨셉을 하자니 혹시라도 부모님이 보실까 겁이 난다. 나이 마흔에 구질구질하게 연명하는 딸의 모습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실 게 분명하다. 비혼을 꿈꾸는 당당한 노처녀 컨셉은 이론상으로는 멋지지만 현실의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비혼은 선택이어야 하는데 영상 속의 나는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선택받지 못한 재고품으로 비춰질것 같다, 저러니까 결혼못했지 ㅉㅉ 댓글이 달릴것 같아 수치스럽다 힝.



이렇게 하나씩 지워보니 남는 컨셉은 딱 하나다.

컨셉 없는 사람의 브이로그.


잘 살지도 않고, 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하루를 어떻게든 넘기는 중인 인간의 기록.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닌, 마흔이라는 애매한 연령대의 애매한 태도와 애매한 삶. 힐링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고, 성공담은 더더욱 아닌 그냥 계속 살아 있는 사람의 혼자서 재미있게 사는 컨셉.


생각해보니 이게 제일 나답다.

그리고 아마, 가장 숨길 수 없는 컨셉이기도 하다.


누가 노처녀의 1분짜리 영상을 볼까 싶지만, 이렇게 살면 노처녀가 됩니다라는 교육 영상이 될지도 모르니
일단은 고고씽!



우리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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