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
늦은 저녁,
화장실 문을 열면 여러 세면도구들 사이에 솔이의 칫솔이 눈에 띈다. 솔이가 양치질을 한 흔적이다.
나는 매일같이 그 칫솔을 칫솔살균기에 넣는다. 칫솔들이 세균들의 공격으로 시름시름 앓는다는 생각이 든다.
솔이는 그만한 나이의 다른 아이들처럼 양치질을 꺼린다. 그런 솔이에게 양치질을 하도록 하는 나의 방식은 '유예'다.
이런 식이다. '솔아, 양치질 언제 할까? 5분 후, 10분 후?' 이렇게 물으면 솔이는 늘 '10분 후'라고 대답한다.
지금 바로 해야 한다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던 솔이도 이렇게 유예기간을 두면 순순히 그 일에 참여한다.
솔이가 꺼리는 일에 대해 나는 이 '유예'의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이 방법은 제법 효과가 있어서, 솔이와 나는 별 마찰 없이 공유된 일들을 해치운다.
예를 들어 약을 먹을 때도 유예 시간을 두면 솔이는 거부감 없이 약병을 문다. '솔아, 10분 후에 약 먹을까?'
재밌는 vod를 볼 때에도 '솔아, 하나만 더 보고 들어가서 잘까?' 하고 물으면 솔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 혼자서 재밌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도 '솔아, 이 놀이 한 번만 더 하고 잘까?' 하고 제의하면 어김없이 받아들인다.
종종 솔이가 역제의를 할 때도 있다. '아빠, 한 번만 더하고.'라고 말하면 나도 순순히 그 제의에 따른다.
무슨 일이든 '즉각' 하도록 하면 아이들은 짜증을 부리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을 더 하고 싶은 욕망, 하기 싫은 일에 직면하고 싶지 않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타협을 위해 조금의 시간만 더 투자한다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으면서 순조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솔이를 통해 깨닫게 된다.
사실 이것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타협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