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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344

결혼

by 모래바다


며칠 전 하굣길에 학교에 갔다가 드디어 솔이를 좋아한다는 아이를 만났다. 곱슬곱슬 파마를 한 여읜 아이였다. 때마침 솔이가 씩씩거리며 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아빠, 쟤 좀 혼내줘. 자꾸 놀려...야, 너 이리 와. 얼른, 이리 안 오면 죽을 줄 알아!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난다.


- 왜 그래, 솔아...어떻게 놀렸는데?

-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눈을 크게 떠. 그리고 크게 웃으면서 놀라게 한다니까.

나는 속으로는 별 일도 아니구만, 생각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그 아이를 불렀다.


- 너 왜 솔이 괴롭히니?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러자 그 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소리치듯 말했다.

- 나는 솔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헐. 나는 뜻밖의 당당한 고백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릴 적 그런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감정 표현을 잘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멀리 도망간 그 아이를 포기한 솔이가 한 마디 내뱉는다.

- 어린 게 무슨 사랑을 한다고!


집에 와 간식을 먹으며 슬며시 솔이에게 물었다.

- 솔이 크면 아빠와 결혼할 거지?

그러자 솔이가 놀라며 말한다.

- 안돼. 아빠하고 결혼하면 안된대.

- 왜?

- 내가 크면 아빠는 할아버지 되잖아.

- ......(몇 달 전만 해도 아빠와 결혼한다는 결심이 굳건했는데)

- 나도 아빠하고 결혼하고 싶지만......

- 괜찮아. 할아버지 되면 어때? 결혼해서 계속 같이 살면 좋잖아.

- ......그런가? 그럼 결혼하지 뭐.


오늘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온 솔이가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찼다.

- 아빠, 오늘 걔가 제일 웃기는 이야기를 했어. 제일 웃기는 이야기.

- 뭔데......

- 궁금하지? 궁금하지. 정말 걔가 한 말 중에 가장 웃기는 이야기였어.

- 뭔데에??

- 글쎄 걔가 나하고 결혼하겠대! 정말 웃기는 이야기 아니야? 정말 웃기는 얘기지?

솔이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지만 아주 기분 나쁜 눈치는 아니었다.


곁에 있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 그 아이 엄마한테 전화왔었어. 걔가 솔이 많이 괴롭히는 거 아니냐구. 솔이가 뭐가 좋냐고 물었더니 다른 아이들은 함부로 말하고 거칠게 대하는데 솔이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해줘서 좋대. 자기네 엄마보다 좋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대.


뭐지, 이 으쓱한 느낌!


SE-846daf0f-49e8-4e4a-b12b-dbee6e2a09dd.jpg?type=w773 요즘 솔이는 사진 찍을 때 반듯하게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다. 촌스럽다면서. 내 돋보기까지 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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