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입구인 이도백하역으로 가는 기차가 이튿날 새벽에 있어 단동 시내 구경을 나갔다.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 단동은 다른 중국의 대도시들처럼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듯 했다.시내는 서울 명동의 어느 복잡한 거리를 보는 듯 어지러웠다. 도심은 서울 뺨치는 물건들로 즐비했는데,현지인 조차도 이런 물건들을 누가 사는 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빈부의 격차가 아주 심하지만,서민들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가격 정책으로 빈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쌀이나 반찬값은 무척 싸다.
무슨 화장품 회사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는 듯.
육교 위에서 대학생들이 家敎(가교)라고 쓴 종이들을 들고가정 교사 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육교에서 구걸을 하던 한 꼬마와
이를 피해 도망치는 한 아가씨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묵었던 민박집 입구. 5층 아파트.
우리 나라의 옛 아파트처럼 쓰레기를 직접 투척할 수 있게 만들어 냄새가 고약했다.
중국에서는 땅과 집은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70여년씩 계약을 하기 때문에 실제 개인 소유나 마찬가지라고.
7월 18일 새벽 5시경, 이도백하로 가는 기차를 타다.
단동에 사는 아들 식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노인.민족에 상관 없이 나는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침대칸. 배의 침대칸보다는 나았지만, 낡고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특히 이도백하까지 가는 기차는 여름에만 운영하는 것으로써,이 기차는 올해까지만 운영한단다.
17시간 달리는 기차.
기차에서의 시간이 무료해질 무렵, 평양으로 가는 기차를 만났다.
또 한번 마음이 우울해졌다.
17시간 동안 내내 끊이지 않던 옥수수밭.붉은 벽돌의 획일적인 모양의 집들.
왜 이렇게 기적 소리를 잦은지.
컵라면을 끓여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기차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노력마저 지쳐갈 무렵,
우연히 한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옌변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뒤,
단동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중.
운이 좋게도 정통 한족인 그녀로부터 중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꼭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우리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으로 '거시기'라는 단어를 알려 주었다.
이 한 단어로 인해 그녀의 한국어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턱없이 맞지 않는 월급 체계로 인해
중국에서 일반적인 월급쟁이가 돈을 모아 한국을 방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도백하에 도착한 것은 7월 19일 새벽 1시 경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비는 기차가 단동에서 국경선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내내
기차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