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니시 라인

by 심시현

“엄마 나 합격했대”

핸드폰을 통해 전해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났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업계에서 연봉 1위라 회자되는 굴지의 기업에 합격했다는데 기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둘째는 다른 기업에서도 특채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어쩌면 양손에 떡을 들고 고민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말에 집에 오면 축하 파티해줄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기쁜 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전화를 끊은 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오는 감정은 기쁨과는 거리가 있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피니시 라인이 떠올랐다. 42,195km를 달려온 마라토너들이 고통과 환희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마침내 밟는 선...


학령기에 들어선 때를 시작으로 석사과정까지 숨차게 달려온 18년 시간의 피니시 라인이 이 취업인가?


아이는 이 취업을 위하여 중. 고등학교를 거쳐 학사와 석사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휴학이나 어학연수 한 번 없이 공부에만 매달려왔던 건가?

나는 이 취업을 위하여 인강을 뒤지고, 밤을 새우고, 다른 일에 앞서 아이 픽업하는 시간부터 챙기며 뒷바라지에 쥐어짜듯 힘을 다했던 건가?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압박하면서 말이다.


허탈감이나 허망함, 또는 실망 같은 것은 아니지만, 훅 들어온 현실이 갖는 이물감은 자문에 답을 할 수 없게 했다.


둘째는 어려서부터 두 번 말하게 하지 않는, 착하고 바른 아이였다. 특별한 사교육 없이 중. 고등학교 시절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에도 장학생으로 합격해, 우수한 학생을 보내주어서 감사하다는, 총장명의의 편지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하기까지 아이는 열심히 했다. 첫째가 불만을 쏟아내고, 때로는 남편까지 힐난의 눈초리를 보였지만, 나 역시 둘째 뒷바라지에 성실을 다 했다.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던 고등학교 때, 아이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면서 그 과정의 피니시 라인, 혹은 아이의 장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되짚어보면 그런 걸 생각하는 것은 몹시 비현실적이었다. 꿈이나 희망보다는 대학과 학과가 가까웠고, 대학이나 학과의 선택은 적성이 아니라 결국 성적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든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적이었다. 그래서 목적지보다는 달리는 일 자체에 집중했던 것 같다, 마치 본능에 충실한 말처럼.


합격자 발표 후 며칠이 지나자 아이의 얼굴에서 합격자 발표 때의 기쁨은 사라지고 우울한 빛이 설핏설핏 보였다.

말은 안 해도 아이의 마음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대학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선발돼 그 과정을 수행하느라 시간을 쪼개어 썼고, 틈틈이 관련 대회에도 참여하느라 늘 분주했다. 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남다른 성취와 보람을 갖기도 했지만, 늘 고3 수험생이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응원했지만, 그때도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아이가 맞이할 ‘그 무엇’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그리는 아이의 미래는 늘 추상화였다. 추상성은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아이의 취업은 확장성을 닫으며 추상을 네 귀가 딱 맞는 구상으로 후다닥 바꿔버렸다. 나의 당황스러움, 혹은 아이가 느낄 회의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이의 삶에서 추상은 모두 끝이 났다. 아이 앞에 있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서 어지러울 정도인 야멸찬 현실뿐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갖고 있었던 그 추상성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가졌던 모호한 꿈과 은근한 자부심, 그리고 영향력을 내려놓아할 때다,


아이의 취업 앞에서 느꼈던 낯선 감정이 문득 미안함으로 바뀐다.

아이가 싫다는데 조금만 더 도와주라는 담임선생님 말만 듣고 억지로 과외를 시킨 게, 잠이 모자라 못 일어나는 아이를 득달같이 깨워댄 게, 아침 1시간 공부 조금 못하는 게 무슨 그리 큰일이라고... 그냥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좀 쉬게 한 학기만 휴학할까 했을 때 못하게 말린 게.

미안해...


아이는 앞으로 더 많은 피니시 라인을 만날 것이다.

이제는 천천히 가라고 하고 싶다. 천천히 가자 그래도 충분하다. 좌우와 앞뒤를 살피면서 천천히 천천히.


언젠가 다시 마주하는 피니시 라인에가벼움으로 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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