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사람들.

by 심시현

대상이 학생이든 성인이든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이나 그 집안에 대해 적지 않은 부분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내밀한 부분이 포함되기도 한다.

-어떤 글쓰기든 글쓰기에는 자기 고백이 들어간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옷 벗기’가 된다- 대학 때 배운 내용이 글을 가르치면서 저절로 체득되었었다.


모든 글이 ‘자기 고백’에서 예외일 수 없지만, 수필은 그 특성이 유독 강한 분야다. 자기 고백과 성찰, 이 두 가지 없이 수필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고백’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맨 얼굴과 같은 자신의 바닥, 자기 삶의 가장 너저분하고 처절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데드 라인이 그어지고, 대부분은 드러내고 싶은 부분, 또는 드러낼 수 있는 부분만을 표현하게 된다.

수필이 받는, ‘규방 문학’ ‘중산층의 문학’이라는 비난은, ‘자기 고백’이 수필의 필수 요소인 한 멈춰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수필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수필에도 허구를 허용하는 수필가가 있지만, 허구는 아직은 소설의 영역임이 일반적 인식이다.


‘자기 고백’의 어려움은 그 노출의 데드라인을 어디쯤 긋느냐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애초 수업의 목적이 무엇이든 수업을 위해 모인 그룹들은 그룹마다 특성이 생긴다. 어떤 그룹은 좀 더 학구적이고 어떤 그룹은 좀 더 감성적이다. 그리고 어떤 그룹은, 자기 고백의 데드 라인을 아주 낮게 긋는 투명함을 특성으로 갖는다. 그런 사람들은 바닥의 모래알을 다 보여주는 맑은 물 같아서 때때로 나는 얼마큼 탁한가, 반성의 마음을 갖게도 했다.


모든 글이 자기 고백을 포함하는 그 이유로, 모든 글쓰기 수업에는 -수필 쓰기든 힐링 글쓰기든 자녀지도든- 심지어 독서 모임에서도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세련된 요즘 엄마들은 고백의 데드라인을 아주 영리하게 긋는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 시어머니 이야기다. 다시 표현하면 꺼내놓을 만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때로는 푸념인 듯 하지만 결국은 자랑인 이야기도 잘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간혹 모두가 아는 그 데드 라인을 지워버리며, 마치 예상치 못한 혁명과도 같이, 꺼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이야기에는 주로 어린 시절의 가난, 학대, 성폭력 등이 담겨 있었다.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리는데, 울음이 격해져 이야기가 여러 번 끊기기도 했다.


주위의 비난과 질시가 두려웠을 이야기를 듣는 그룹원들은 마치 가해자처럼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도 없이 가슴 아프고 슬픈 사연에 집중한다. 어느새 그룹의 중심 정서는 공감이 되고 그들은 진심을 다해 위로와 격려를 나눈다.

천천히 어깨를 다독여 주는 손길, 가만히 내미는 휴지에서 상처를 토로한 사람은 안도 속에 위로를 받고 아픔을 덜어놓는다.


비난받고 손가락질당할까 두려워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반응이 그 반대라는 것은 인간사의 다채롭고도 희망적인 모습이었다.

이상한 일은 한 사람이 지워버린 데드라인은 그 옆 사람에게로 전염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민낯을 드러내면 그 반원들 대부분이 민낯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주 투명했다. 그리고 그 반의 수업목적에 상관없이, 투명함은 힐링이라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강사인 내가 한 것은 별 것 없지만, 그런 반일 수록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사람의 투명함 반대는 불투명이 아니라 무거움이다. 투명함을 가로막으며 숨어있는 것은 늘 크고 무거운 짐이다.


유리는 양쪽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유리 본래의 목적을 위해 투명해야 하지만, 사람의 투명함은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행복과 온전함을 위하여 필요하다.

크고 무거운 짐은 분명 투명함 속에서 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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