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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r 23. 2021

학폭의 현장

   -싸우기 전에 이미 진 아이들

가끔씩 나오던 학폭 기사가 이즈음은 매일이다시피 뜬다.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피해자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현재 학폭의 가해자와 그 부모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실제적인 경각심을 줄 가장 확실한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학폭 뉴스를 볼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자괴감과 미안함으로, 이제는 20대 성인이 되었을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학창 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잘 자랐을까? 스스로를 잘 다독여 상처를 극복했을까...?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무줄의 한쪽 끝을 잡고 서 있다가 저 쪽에서 한껏 잡아당겨 늘린 고무줄의 다른 쪽을 탕- 놓으면, 채찍이 되어버린 고무줄을 맞으며 견뎌야 했던 아이,

 

‘오염물질’이라 불렸던 아이는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복도 양쪽으로 갈라진 아이들 사이를 걸어야 했다. 아이들이 갈라진 이유는 ‘오염물질’인 아이와 스치기라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3번이나 자해를 시도한 팔을 내게 보여주던 아이,


틀어놓은 수도꼭지 밑으로 던져진 가방을 끌어안고 집에 가서야 울었다는 아이,    

  

외부강사인 나는 문제를 해결할 힘도 없고 해결할 위치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깊은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때때로 내가 알게 된 문제를 들고 학교의 교감선생님이나 담임교사에게 가기도 했지만, 마땅히 되어야 하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깔끔한 서랍장을 떠올렸다. 한눈에 들어올 만큼 깨끗하고 호감 가는 서랍장...

옷이 삐질러 나와 있다.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서랍을 열어 헝클어진 옷가지들을 잘 정리한 후 닫는 방법. 다른 하나는 삐져나온 옷가지를 막무가내로 쑤셔 넣고 닫는 방법. 서랍장의 외관은 똑 같이 깔끔하지만 두 개는 본질적으로 다른 랍장이다.      


학폭이나 집단 괴롭힘을 해결하는 학교의 방식을 볼 때마다 후자의 서랍장이 떠올랐다. 그래서 글이나 상담을 통해 문제를 털어놓던 아이들에게 나는 더 미안해야 했다.   


A엄마가 공개수업이 끝난 뒤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학교에서 A가 당하는 학폭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내놓은 해결책은 전학, 전학이 싫으면 반이라도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했단다.


눈이 큰 A는 여리고 착해빠진 아이였다. 절망스러운 것은 엄마 역시 여리고 순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온 힘을 다해 피해를 주장하고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리고 순한 그녀는 결국 하지 못했다.      


같은 반 아이들과 A의 가방을 공처럼 던지며 주고받다가 종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 밑으로 던진 아이는 A와 함께 내 수업을 듣는 아이였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소리 높여 인사하고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이어서 예뻤던 아이가 집단 괴롭힘의 주동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왕따나 학폭을 주동하는 아이들은 결코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항상 놀라웠다.      


B의 엄마는 이주민이다. 짧지 않은 세월이었을 텐데도 그녀는 한국말에 익숙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같은 반 아이가 B의 머리를 뒤에서 때렸다고 한다. 뒤통수를 때리는 게 기분 나빴지만, B는 참았다고 한다.

뒤통수를 때리던 가해 아이가 체육시간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지나가다 배를 툭툭 때리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저쪽에서 날아와 가슴팍에 발차기를 해도 참았다고 했다.     

  

나는 B에게 말했다.

네가 참지 않아야 그 아이가 괴롭히는 걸 멈출 수 있어.      




피해 아이들에게서 공통점 다. 


아이들은 눈빛에서 태도에서 기에서 싸우기 전에 이미 지고 있었다.

이미 진 아이들은 도저히 가해 아이에게 저항할 수가 없다.      

세상은 약자 편이 아니더라.

약자를 편드는 정의의 사도는 영화에나 나온다.

이미 진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도 학교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깔끔한 서랍장의 외연이 무엇보다 중요한 조직은 깔끔함을 오염시키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조용한 학교를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은 피해를 입었다고 소리치는 피해 아이다. 조용하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지...

그런 분위기에서 가해자는 피할 공간과 뻔뻔할 공간을 넉넉하게 찾는다. 나의 오해일까...? 나의 오해였으면 좋겠다.    

  

학폭에 대한 중. 고등학생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해결할 수 없어요. 부모님이 나서고 선생님이나 학교가 나서도 해결하지 못해요. 경찰에 잡혀가도 안 될걸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당사자뿐이다.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싸우기 전에 먼저 지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싸움이 물리적 힘이든 기세이든 분위기이든 먼저 지지 않아야 한다.

싸우기 전에 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쉽게 시작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지킬 의무가 있다.

타인의 선의 위에 나의 삶을 세울 수는 없다. 두려움은 망상 같은 것이어서  실체가 없다.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맞닥뜨려야만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상대는 거인도 능력자도 아니다. 기껏 해봐야 비슷한 또래일 뿐이다.

그래서 싸워봐야 안다. 지더라도 괜찮다.


싸우고 진 아이들과 싸우기 전에 이미 진 아이들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싸우고 진 아이들은 지속적인 학폭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덧붙임.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라고 학부모에게 강조했던 내용 3가지.


1. 피해를 당했다면 그 즉시 그 현장에서-교실이든 수업 중이든 길거리든- 최선을 다     해 소리치거나 울부짖어 주변에  알릴 것(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2. 아이가 당한 억울함이나 피해를 반드시 부모에게 말한다. 부모님은 그것으로 속상     해 하지 않는다는 것과 부모에게 알리지 않음으로 문제가 계속 커진다는 것을 각 시킬 것.

3. 상대에게 저항한다고 해서 세상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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