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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Sep 01. 2021

자가 격리 3일 차

월요일.

오후에 자가 격리 수칙 안내사항이 들어 있다는 쇼핑백이 도착했다.

봉사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남자가 대문 밖에 둔 쇼핑백을 남자가 차를 타고 간 뒤, 나가서 가지고 왔다.


쇼핑백 안에는 안내문 몇 장과 소독약, 그리고 처음 보는, 몸에 붙이는 체온계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자가 격리 앱을 설치했다. 자가 격리 앱을 설치하는 데에는 담당자 아이디가 필요했다. 아이디 안내문이 들어있는 누런색 서류봉투 앞면에 적혀 있었다. 이름이 아닌 아이디.


생각해 보니, 보건소와 몇 번 통화할 때마다 담당자 전화가 갈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담당자와 통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담당자가 있기는 있는 걸까? 담당자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불안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이송된 후부터 불쑥불쑥  불안이 엄습했다. 남편이 격리하는 곳에서 갑자기 증상이 발현되어 나빠지면... 병상이 없다, 병상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었다는 것 같은 불행한 기사들이 스크랩북 넘어가듯 연이어 떠올랐다.


내가 양성으로 확진이 된다면...  아이가 이 집에 혼자 있어야 되나? 아니면 미성년자들을 보호하는 다른 프로그램이 있을까...?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안내문에 나와있는 대로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했다.  이 앱이 나를 보호할까...?


오후 5시

담당자에게서 안내문 수령 문서를 사진 찍어 전송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 일반 핸드폰 번호였다. 담당자가 유령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전 9시 오후 9시 하루 2번,  앱으로 들어가 자가진단을 해야 했다. 발열이 있나? 기침을 하나? 목이 아픈가? 등 간단한 질문이었다.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를 터치하면 대답이었다.


기침을 하거나 발열이 되면 이 앱을 받고 있는 이들은 즉시 조치를 취해줄까?


나라는 나를 어디까지 책임져 줄까? 나는 어디서부터 나라에 나를 책임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이 앱으로 위치추적을 해서 자가 격리자의 격리지 이탈 여부도 체크한다고 했다.

보호를 받고 있는 건지 감시를 당하고 있는 건지...


아무튼 나와 아이는 몸의 상태를 체크해서 어떤 상대에게로 계속 보내야 했다. 그 상대가 사람인지, 유령인지, 빅브라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감사하고 싶었다.

남편도 나도 아이도 일단은 무증상인 것을, 그리고 자가격리를 이 집에서 하게 된 것을.  


내 마음도 하늘도 모두 흐렸지만, 마당의 잔디는 연둣빛으로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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