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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Sep 01. 2021

자가격리 4일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초록빛 평야가 위로를 준다. 자가격리를 이 집에서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고 고맙다


오전에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첫 문장에서는 티가 안 나더니 두 번째 문장으로 넘어가니 기계음의 표가 났다. 목소리는, 발열이 있나, 기침을 하나 등 앱에 있는 내용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예-면 1번, 아니오-면 2번 하는 식으로 대답이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말로 하면 되었다. 격리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녹음이 되는 시스템인 듯했다.


자가격리 대상자라고 통보하는 보건소 직원의 처음 전화 외에 이 전염병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사람들을 접한 적이 없다. 내가 접한 사람은 남편을 태워 간 구급차 기사와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 두 명뿐이었다. 나를 관리하는 건 오직 스마트 폰이다. 스마트 폰 안의 앱, 문자, 기계와의 통화.  

그들은 알 수 없는 어느 장소의 첨단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까?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누군가가 , 역시 알지 못할 어느 곳에선가 나를 관찰하고 세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은, 코로나 팬데믹만큼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두려운 일일 수도...


그들에게 시스템 저쪽의 나 같은 사람들이 인격으로 보일까?

나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들이 따뜻한 사람들이길 바랐다.


오후에 보건소에서 보낸 택배가 왔다. 나와 아이, 각각 오니 상자는 두 개였고 나 혼자 들기는 버거운 무게였다. 상자를 개봉하자마자 00시 구호물품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써놓은 안내장이 나왔다. 12개들이 즉석밥 1 상자, 참치 캔, 즉석 국과 죽 생수 등이 들어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어디에 대고 고맙다 인사를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인사를 받을 상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주스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단다. 여기저기서 필요한 물건 있으면 말하라고, 집 앞에 갖다 두겠다고 했지만, 전염병 앞에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님이 분명했다.


주스와 이스크림이 없다 뿐이지 결핍을 느낄만한 것은 없다. 동시에 갇힌 시간 갇힌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결핍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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