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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Sep 30. 2021

자가격리 - 마지막 날.

12일째 날 아침. 

귀하께서는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대상입니다, 로 시작되는 긴 문자가 왔다. 어법과 띄어쓰기가 조금씩 틀렸지만 -공공기관에서 맞춤법이 틀리는 건 좀 이해가 안 된다- 요약하면 내일 자차를 이용해 보건소 선별 진료소로 나와 검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드디어 자유다.      


열흘 넘는 격리 기간 동안 책을 세 권 읽었고, 넷플스에서 영화를 6,7편 본 것 같고, 미열람으로 가득 찬 메일함과 오래 묶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많이 다르게 인터넷 쇼핑을 했다.     

 

인터넷으로 사는 물건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일회용품이나 학용품 같이 너무 사소하거나 가격이 너무 싸거나 신선해야 할 먹거리 등은 직접 가서 사고, 인터넷 쇼핑은 가격 경쟁력이 좋아 보이는 공산품 위주로 했었다. 하지만 격리당한 처지에서 그 경계 무의미했다.    

    

우유까지 주문하는 낯선 인터넷 쇼핑을 막상 해보니-

할 만했다. 그런 방식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고, 새벽 어느 결엔가 와서 집 앞에 물건을 두고 가는 방식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와 가장 어울리는 쇼핑 방식으로도 보였다.

배달되어 온 물건들은, 말끔한 포장용기, 소분되어 있는 양, 흠잡을 데 없었다.


아이들 입맛에 따라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것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그 높은 칼로리에 비해 포만감은 없고, 더부룩하기만 했다. 그런 때면 칼칼한 찌개나 김치수제비 같은 게 고팠다. 아이들은 나의 촌스러움을 놀렸지만, 칼칼한 찌개나 김치수제비가 주는 그 기분 좋은 포만감과 뿌듯함은 언제나 대체 불가였다.      


기분 좋은 포만감과는 다른 더부룩함, 인터넷으로 쇼핑한 물건들은 딱 그랬다.

포장용기에 담기고 박스에 담겨 날라 온 먹거리로 음식을 해 먹으면 -사실 조리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았다-, 마트에 가고 싶었다. 5일장 서는 날에 맞춰 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마트나 장은 가기가 좀 귀찮은 곳이었다. 그래서 야금야금 미루다가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야 어쩔 수 없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그런 곳이었다.    

  

마음을 돌려세우는 현실의 힘은 무겁고 거대했다.

        

그 힘 앞에 맥없이 물러난 일상은 어느새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마트에 가서 1+1 물건과 가장 신선한 야채를 사고, 학원으로 아이를 태우러 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너무 평범하고 너무 사소해서 말하기가 부끄러울 것 같은 그런 것들이 몹시 하고 싶었다. 그리웠다.


13일째 아침.

kf94 마스크로 입을 꼭꼭 가리고 아들과 함께 진료소에 갔다. 다행히 코로 들어가는 검침봉이 지난번보다 덜 불편했다.


보건소 옆에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참새 방앗간처럼 이 길을 지나갈 때면 자주 들리던 곳이었다. 그 집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쌉싸름한 커피 맛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잠깐 내려 커피 한 잔을 사고 싶은 마음이 뾰족이 올라왔다. 욕망을 꾹꾹 누르는 방법은 가게를 지나칠 때 속도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마지막 날 오전.

귀하는 오늘 낮 12시부로 자가격리 해제 예정입니다- 문자가 왔다.


어제 마실 수 없었던 커피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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