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북서 방향 하늘에서 일자나 V자 대열로 날아가는 새 떼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 떼가 보이면 고개를 꺾고 새들이 시야를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열을 이룬 새들이 사람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로 북서방향이었는데, 좀 있으니 남동방향, 좀 더 있으니 방향을 따질 필요 없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새들은 주로 이른 아침에 보였다. 그리고 몹시 시끄러웠다. 그 소리를 딱 맞게 표현할 수 있는 의성어는 없는 것 같다. 쌍기역 음은 정확히 들어가지만, 오리 같은 꽥꽥도 아니고 갈매기 같은 꾸륵꾸륵도 아닌, 노래나 울음으로 표현되는 시적인 새소리와는 몹시 거리가 먼, 그런 소리였다.
동시에 울어대는 그 새소리에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았다. 경이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새소리가 들리면 마당으로 나가 바로 머리 위를 나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쌍기역 음으로 우는 새들이 철새임은 분명하겠지만, 다가 올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를 떠나는 새인지, 아니면 추위를 찾아오는 새인지, 그도 아니면 여행객처럼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이곳을 잠깐 경유하는 새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나 세 번째 경우라면 새들이 차츰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침 오후 구분 없이 새들은 점점 많아졌다.
몇 권의 책을 뒤져보고 나서야 그 새들이 기러기임을 알게 되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저 멀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후사의 구절을 더 구슬프게 만드는 선경의 그 기러기가 바로 우리 집 주위를 날아오르는 새였다.
기러기는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철새 도래지를 찾아보면 이 지역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지만, 우리 집 주위는 기러기가 겨울을 나기 위해 오는 곳이었다.
기러기는 열 마리에서 스무 마리 남짓으로 함께 날다가 추수가 끝난 논이나 밭에 내려앉았다. 떨어진 나락이나 새로 올라 온 풀은 새들의 풍성한 식탁이었다.
기러기는 수다스러운 새임이 분명한 듯했다.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는, 이쪽으로 오라고 하는 것인지, 저 쪽으로 가자고 하는 것인지, 조용하기보다는 왁자스러울 때가 더 많았다.
가끔씩 무리를 잃어버렸는지 날개를 파닥이며 혼자 날아가는 새가 있었다. 크기로 미루어 그런 새는 대부분 새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혹은 느낌 때문인지 짧게 반복되는 울음소리가 절박하게 들렸다.
수 백 마리 기러기 떼가 한꺼번에 우리 집 방향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그런 때면 히치콕의 영화 ‘새’가 떠올랐다. 기러기들이야 우리 집을 지나 빈 논밭이 목적이겠지만, 나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기러기 무리는 위협적인 힘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히치콕은 이런 경험을 했을 거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대오를 흩트러트리지 않는 무리를 눈으로 좇았다.
이곳이 먹고살만하다고 소문이 난 건지 기러기 무리는 갈수록 늘어난다. 그 탓인지 한밤중에도 왁자지껄하며 날아오른다.
푸른빛이 도는 어두운 하늘 위를 나는 검은 새들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다른 세계, 다른 시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착각이 불편하지 않았다.
올 겨울은 뜻 밖에 생긴 수다스러운 이웃과 더불어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들이 보여줄 겨울의 모습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