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걸 내가 다 할 수는 없어. ... 모든 걸 내가 다 하다가는 성격이 나빠지고 말 거야.
- 정세랑, 『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2022), 8면
그러고 보면 내 주위에도 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연락처에 저장할 때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재와 제를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이름만큼 제인, 제욱, 제훈이라는 이름도 자주 쓰인다. 조금 더 변주하면 끝도 없다. 이 책 표지 일러스트 담당자는 '지욱'이다. 아무튼 이렇게 흔하디흔한 이름을 가진 세 남매가 아주 사소한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 초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이다.
인터넷 서점 페이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정세랑 작가를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데,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아주 재미나게 보았지만 그 원작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읽거나 말거나 그때에도 지금도 작가는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에 의해 구원되는 세계".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때에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니 다 허상 같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세상이 이 모양일 리 없다는 비틀어진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 어렸을 적 셈법에 의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2000)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영상 출처: 영화"아름다운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의 유토피아를 만드는방법 (https://youtu.be/QHhaYypxxtc)
3^21 = 10,460,353,203. 세 명씩 돕는 걸 21단계만 거치면 10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00일 기도, 100일 공부도 하는데 21단계쯤이야. 야, 너도 할 수 있어!
지금 새롭게 드는 의문: 이미 21단계는 한참 전에 거쳤을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세상이 참 어려울까? 또 다단계는 단계를 훨씬 쉽게 불리는데 이 다단계와 도움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단연 이익구조이다. 다단계는 단계가 늘어날수록 상위에서 확실한 이익을 얻는다. 그러니 해당 구조를 유지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반면 누군가를 돕는 것의 이익은 눈에 띄지 않는다. 구조를 유지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몇 단계까지 유효할까? 어느 지점에서 끊기는 걸까?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실험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험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런 글은 독후감이라고 올리기가 정말이지 민망스럽다. 그래도 결국 올리는 이유는 힘을 빼기 위해서이다. 힘 주고 있으면 솔직해지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