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데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나날들. 답도 없던 그 시절.
영화 남색대문에서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더 '질문'의 속성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등장인물들은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한다. 장시하오, 너 여자친구 있어? 커로우, 나랑 사귈래? 선생님, 나랑 키스하고 싶어요? 대체 원하는 게 뭐야?
그러나 답은 질문만큼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줄곧 여름날의 무더운 공기뿐. 이 '답이 없음'의 상태는 그야말로 청춘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첫째로, 자기 자신을 '골칫덩이'라고 설명한 커로우처럼, 그 시절은 정말이지 답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선생님에게 자기랑 키스하고 싶냐는 정신 빠진 질문이나 하고.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을 번번이 들어주느라 대신 러브레터를 갖다 바치고, 그 애와 친해지고, 친구를 소개해주고. 한 편으로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라서 그 애의 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위에전을 사랑해서,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를 장시하오에게 데려다줄 수밖에 없는 커로우의 마음은 어떨까. 커로우를 사랑해서 그의 친구 위에전과 데이트를 하는 장시하오의 복잡함은. 둘을 놔두고 혼자서 떠나는 커로우의 뒷모습을 보는 슬픔은... 어른이라면 속세에 다듬어진 탓에 절대 하지 못할 원초적이고 진심어린, 그야말로 답 없는 상황 속 답도 없는 행동이다.
둘째로, 아무리 눈을 감고 상상해도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던 커로우처럼 그 시절에는 답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상대방을 모르고, 세상을 모른다. 고작 실연당한 슬픔을 어떻게 견디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여기저기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사방에서 쏟아져오는 질문에 누구 한 명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바로 대답이 나오는 보기 드문 장면이 있다. "아빠가 떠났을 때 어떻게 버텼어?" 커로우의 질문에 엄마는 실연을 당했냐면서, "버티다보니 견뎠지. 나도 몰라."라고 답한다. 그러나 답을 하는 엄마의 눈가에 물이 맺혀있다. 엄마는 아직도 견디는 중인 거다. 견딤은 종결될 수 없고 현재까지 지속된다는 것, 또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답을 모른다는 것을 커로우는 아직 모른다.
셋째로, 질문-답의 없음-질문-질문-질문으로 이어지는 대사들은 흔히 젊은 날의 치기라고 여겨지는 용기를 보여준다. 거절보다도 단호한 침묵 앞에서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묵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어떤 답이든 받아내고야 만다. 남색대문에서의 청춘은 몇 번이고 질문이 계속될 수 있던 그 시절의 용기와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사랑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은 미완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은 빈자리로 내버려둠으로써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 못한 채 남은 듯 질문은 덩그러니 남아있다. 장시하오는 그 해 여름 내내 수영을 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커로우가 위에전을 위해 했던 수고는, 둘 사이가 멀어지고 장시하오는 커로우를 사랑하게 되면서 허무로 돌아갔다. 또한 커로우, 장시하오, 위에전 셋 모두의 사랑은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청춘은 다른 어느 시기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를 드러낸다. 어른과 대비되는 미성숙한 시절의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거나 타인의 청춘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청춘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에서 그런 빛나는 시기는 매우 짧다. 그 해 여름처럼 소득 없이 쏘다니다가 어느새 끝나버리고 만다. 봄에 피어난 푸르른 나무들이 여름이 지나면 모두 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청춘(靑春)은 그렇게 과거가 된다.
Q. 제목을 <남색대문>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
제목은 ‘멍커로우’의 대사에서 가져왔다. ‘장시하오’가 남색대문 앞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으로 이들의 미래를 추측하게 만든다. 또 매일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뜻하기도 한다. 크든 작든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이 미래에 영향을 끼치니까. 우리 모두는 매일 저마다의 문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영화의 전당 > 영화 > 지난 프로그램 남색대문 DIRECTOR Q&A
여름의 끝자락에서 질문들은 차차 갈무리된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한 계절이 끝나고 그다음 계절이 열리며 그들도 계절처럼 나뭇잎처럼 변화한다. 연인관계도 친구관계도 새롭게 정립되고, 더불어 자기 정체성에 새로운 정의들이 추가된다. 장시하오와 커로우는 헤어졌지만 친구가 되었고 커로우와 위에전의 우정은 깨어졌다. 장시하오는 커로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커로우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의도하고 기대하던 변화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늦여름의 처서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날이 처서일 줄 알고 가을을 준비한 적 없이, 문득 시원해진 밤바람에 확인해보면 어느새 처서가 지났듯이. 그렇게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숙해진다. 청춘이 끝나고 어른이 된다. 어쩌면 청춘은 유통기한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