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카사노바는 어떻게 되었을까?

<카사노바의 귀향>, 아르투어 슈니츨러

by LEAN

카사노바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천하의 바람둥이다. 그에게도 늙음이라는 것이 찾아온다. 소설 <카사노바의 귀향>은 쉰 세 살이 된 카사노바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세상을 누비며 싸우는 모험이 아니라, 한 여성을 차지하고 자신의 젊음과 명예를 되찾으려는 슬픈 모험 이야기다.


giacomo-casanova-e6254ecd-08f3-448a-a6a5-3ea7c28df47-resize-750.jpeg


젊었을 적의 카사노바는 수려한 외모, 뛰어난 매너, 화려한 입담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낮에는 도박을 하고, 저녁에는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사랑한 여자들은 매우 다양했으며, 죽음이나 싸움으로 연결되는 아찔한 일들이 벌어지게 했다.


movie_image.jpg


하지만 이제 그러한 사건 사고들은 모두 옛 말이다. 카사노바의 유일한 소원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젊어서 너무 많은 염문을 뿌린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평의회에 청원서를 내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한다.


1459950911_9HCtLMa.jpg


늙은 카사노바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것은 무신론자라 생각되는 볼테르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하는 일이다. 일종의 지적인 자기 과시인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로 그는 다시 유명세와 사람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수중에 돈도 없고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낮에 산책하고 밤에는 친분이 있는 귀족과 카드놀이를 하는 것 뿐이다. 만나는 여성도 여관 안주인 한 명에 불과하다.


vozvraschenie-kazanovyi.jpg


이러한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찾아온다. 이전에 돈을 빌려주었던 올리보라는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올리보는 카사노바를 자신의 집으로 극진히 모시는데, 그 곳에는 그의 조카 마르콜리나가 있다. 카사노바는 지적이고 독특한 마르콜리나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그녀는 남자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고 고등수학과 같은 수준 높은 학문에만 관심이 있는 똑똑한 아가씨였다. 카사노바는 그녀를 차지하는 것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되찾는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casanova_07.jpg


마르콜리나는 나를 다시 젊게 해줄거요.
아말리아, 내가 그녀를 차지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오.


카사노바는 자신에게 구애하던 올리보의 아내 아말리아에게 마르콜리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말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차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르콜리나는 젊고 멋진 로렌치 소위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학문에만 관심이 있고, 유산으로 얻은 재산도 많다는 것이다. 아말리아는 과거에 자신이 카사노바와 가졌던 관계를 이야기하며 그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그녀가 자신을 치켜올릴 수록 오히려 위축된다.


그리고 아말리아, 이 손을 봐요! 이 손을 좀 봐요! 손가락은 짐승 발톱 같고...
손톱에는 작고 노란 반점들이 있소...
아말리아, 여기 핏줄들은 시퍼럿고 부풀어올라서 영락없는 늙은이 손이오!


카사노바에게 이제 마르콜리나의 환상은 더욱 강해져서, 그녀가 손수건을 집어올리는 것만 보아도 그녀의 벗은 몸과 음탕한 행위를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들판에서 마르콜리나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수학의 가치에 대한 현저한 견해 차이로 인해 오히려 관계에 역효과를 얻게 된다. 이제 카사노바는 더욱 몸이 달아, 마르콜리나를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영예를 되찾는 일과 동일시하게 된다.


hqdefault.jpg


르콜리나는 여자가 아냐.
학자이고 철학자이며, 내 생각에는 세계적인 기적일 뿐이야.
하지만 여자는 아냐.

카사노바의 정체성은 여성들에게 호의와 열정을 얻음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그는 마르콜리나의 혐오스런 시선에 대한 상처를 감추기 위해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다. 마르콜리나의 여성성을 부인해야만 카사노바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 반전이 찾아온다. 새벽 무렵 마르콜리나의 침실 근처를 거닐던 카사노바는 로렌치 소위가 그녀의 창문에서 몰래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카사노바는 크게 격분하게 된다. 고귀하고 순결한 줄 알았던 마르콜리나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혼자서 마르콜리나에게 욕을 퍼붓는다.


너도 다른 여자들처럼 뚱뚱해지고 쭈글쭈글해지고 늙게 될 거야. 가슴은 축 처지고 머리는 푸석푸석 하얗게 세고, 이는 빠지고, 냄새는 지독한 늙은 여자가 되어서...마침내 죽게 될 거야!



pOxIkuJmsI0RYtPn5zV_7gVvJxA@600x346.jpg


이러한 욕설은 풍자적으로 시대를 풍미하던 바람둥이가 늙고 초라해져 남을 뒤에서 욕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사노바는 마르콜리나의 암울한 미래를 상정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의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강하게 노력한다.


1992-Le-retour-de-Casanova.jpg


또한, 카사노바는 자신의 분노를 바로 복수로 옮긴다. 그는 로렌치 소위와 카드놀이를 하면서 이 젊은이가 후작에게 빌린 2천 두카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모두 빼앗는다. 그리고 소위에게 돈을 돌려받고 싶으면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마르콜리나의 침실에 자신이 로렌치의 외투를 입고 잡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의 침실에 들어온 카사노바를 마르콜리나는 열정적이고 따뜻한 환대로 맞아 준다. 그리고 그들은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진다.


le_retour_de_casanova_1991.jpg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햇빛에 비친 카사노바의 얼굴을 본 마르콜리나는 충격과 혐오에 뒤덮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게 된 카사노바도 자괴감에 휩싸인다. 마르콜리나의 표정은 온 힘을 다해 '늙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알몸에 외투를 걸치고 나온 카사노바는 로렌치와 마주친다. 로렌치는 카사노바처럼 똑같이 옷을 벗고 알몸으로 결투를 맞이한다. 이 싸움에서 카사노바는 결국 로렌치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대평의회에서 제안한 대로 베네치아에 가서 스파이 짓을 하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그 지역에서 도망친다.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 아무리 카사노바라도 숙명처럼 찾아오는 노쇠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다가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다. 카사노바는 나이들었으나 도전정신만큼은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 고작 스무 살의 거의 남자에 관심도 없어 보이는 마르콜리나를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목표를 실행에 옮길 뿐 아니라, 로렌치 소위와의 결투를 통해 힘과 노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르콜리나를 비열한 방법으로 차지함으로써 그녀의 경멸만을 얻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했다. 또, 로렌치와의 알몸 결투는 상처받은 노년의 자신과 화려했던 젊음 간의 싸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이 싸움에서 로렌치를 소멸시킴으로써 되찾고 싶어했던 자신의 젊음을 어느정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젊어서 자유정신을 표방하던 카사노바가 이제 대평의회에서 제안하는 대로 자신이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위해 스파이 짓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치욕을 안겨 준다. 이제 그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굴하고 구차한 짓을 해야만 하는 스파이가 된 것이다. 이 또한 카사노바가 삶에서 지향하던 바가 조금씩 타협점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늙었지만 아직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사노바는 슬픈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젊음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나이듦에 잘 적응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카사노바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그의 싸움은 젊었을 때와 달리 비열하고 우스꽝스러운 여정이 되고 말았다.


카사노바는 이제 베네치아로 돌아가려 한다. 베네치아는 그가 사람들에게 듬뿍 사랑받고 힘과 지혜를 과시했던 장소이다. 하지만 이제 카사노바는 타인의 일꾼으로써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자신의 종교나 학문적 신념을 강하게 피력하고, 여성에 대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그가 이제는 인생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는 과연 베네치아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년의 삶을 방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하게 될까? 그건 읽는 이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카사노바의 귀향>, 문학동네, 2010

사진: 영화 Le Retour De Casanova , 1992

영화 <카사노바>, 2005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면을 쓰는 남편, 꿈을 꾸는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