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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별 Dec 14. 2024

한 순간 날아간 7만 원의 수업료

견인된 차, 나를 위한 공간이 절실했던 순간

학교 수업이 없는 날, 나는 혼자 동대문을 누볐다. 예쁜 원석과 부자재를 고르고, 노트에 디자인을 해가며 내 손으로 하나씩 팔찌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든 팔찌를 블로그에 올렸고, ‘신양의 액세사리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첫 글에는 158개의 댓글이, 두 번째 글에는 135개의 댓글이 달렸다.  '너무 예뻐요!', '이거 꼭 사고 싶어요!' 같은 댓글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만든 작품이 누군가의 손목에 채워질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그렇게 판매가 계속 이루어졌고, 2013년에는 사업자 등록까지 하게 되었다.




꾸준히 신제품을 만들고, 블로그에 모든 걸 기록했다. 기록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강력한 도구였다. 그러던 중 ‘아이디어스’라는 플랫폼에서 입점 제안 메일이 왔다. 메일을 읽는 순간 두근거렸다. 당시만 해도 초기 단계의 플랫폼이었지만,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입점을 결정했다. 그렇게 블로그를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했던 제품들이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첫 주문이 들어왔을 때, 그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팔찌 위주로 판매하다가, 점차 ‘데코덴 케이스’라는 제품으로 확장했다. 당시 여러 꾸밈 재료를 이용해 만든 화려한 케이스가 유행이었다. 동대문을 자주 가다 보니 화려한 데코덴 케이스 재료들이 눈에 띄었고, 팔찌 재료와 함께 케이스 재료도 구매했다.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첫 케이스를 만들어 선물했다.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케이스는 이후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레진 아트’를 발견했다. 투명한 레진에 글리터와 색을 더해 만드는 공예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레진 작품은 마치 보석 같은 우주를 품은 것 같았다.  한동안 레진에 매료되어 하루 종일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해외 직구로 재료를 주문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자유도가 높은 공예기 때문에 내가 구상한 디자인을 만들 수가 있었는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디자인이 실제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굉장히 가슴 뛰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블로그를 보고 레진 공예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알려주자.’는 마음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했다. 전기를 쓸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알맞은 카페를 대관해서 1:1 수업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가르쳐 주는 일은 생각보다 뿌듯했고, 수업은 점차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평일 저녁 시간으로 잡힌 수업 때문에 아침부터 모든 재료를 챙겨 출근했고, 퇴근하자마자 수업 장소로 부랴부랴 이동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자 한 통이 왔다. 주차되어 있던 차가 견인되었다는 문자였다. 대관한 카페 앞의 공영 주차장이 꽉 차서, 주차 자리를 찾다가 수업 시간이 거의 다 되는 바람에 카페 앞에 주차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하필 주차 금지 구역이었고, 차가 견인된 것이다. 문자를 확인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업을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과 차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뒤엉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무거운 재료를 짊어진 채 택시를 잡아 견인소로 향했다. 수업료로 받은 7만 원은 택시비, 벌금, 견인비로 모두 사라졌고,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던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껏 꿈꾸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공간. 나도 그 공간을 찾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나만의 공간을 떠올렸다. 따뜻한 조명이 있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늑한 공간에 고소한 커피향이 풍기는 공간. 곳곳에 내가 묻어 있고, 나의 이야기가 새겨질 그런 공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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