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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Apr 18. 2024

아피아가도에 늘어선 지하무덤
'카타콤베'

'성녀 체칠리아'의 이야기와 그녀의 무덤이 있는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카타콤베'는 보통 '아피아 가도'에 있는 지하무덤을 일컫는데요,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가면서 이런 지하 무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콤베가 더 유명하지만, 로마 근교에도 45개나 되는 카타콤베가 있습니다. 로마법에 따라 성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성 밖에서부터 아피아 가도를 따라 양쪽으로 15km까지 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카타콤베의 입구, 카타콤베는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입장해야 한다.

카타콤베는 원래 그리스 말로 ‘낮은 곳’이라는 뜻인데요, 이곳이 주변 지역보다 낮아 흔히 ‘카타콤베’라고 불렀습니다. ‘카타콤베’는 이후 지하 공동묘지를 부르는 일반명사가 되었습니다.  


카타콤베는 상당히 넓고 깊어서 아직까지도 그 원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지금 공개되어 있는 것은 전체 유적의 극히 일부입니다. 시신을 지하묘지에 매장하는 풍습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중세에 지하묘지의 존재는 잊혔다가 16세기 이후 여러 지하묘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지하로 파 내려간 공동묘지는 개미굴처럼 여러 층을 이루며 수많은 묘 자리들을 형성했습니다. 카타콤베는 길이만 해도 총연장 900km에 달하며, 이곳에 잠든 그리스도교인들은 600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카타콤베 내부의 미로같은 복도와 시신을 안치하는 '로쿨리'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빈민이나 노예여서 화려한 지상의 묘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부활을 믿었기에 예수와 같이 돌을 파서 만든 지하무덤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로마의 지질은 석회석이어서 땅을 파기에 쉬웠기 때문인데요, 또한 한 번 파낸 땅이 공기와 접하면 단단하게 굳어져서 꼬불꼬불 미로 같은 지하 묘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땅을 파서 굴을 만들고, 굴의 벽에 수평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로쿨리’를 만들어 시신을 넣었습니다. 보통은 시신 한 구가 들어가지만, 둘 또는 그 이상을 묻은 경우도 있습니다.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로 장식된 무덤, 로쿨리에 시신을 그대로 넣거나 석관을 쓰기도 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관을 쓰지 않고, 얼굴을 덮는 수건과 염포로만 시신을 감아서 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대에는 석관을 쓰기도 하고, 지하의 작은 성당 형태의 방에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등으로 장식하기도 했는데, 로마의 귀족들은 화장을 하거나 지상에 돌로 만든 화려한 영묘를 세웠습니다.     

로마법에 따라 어떤 경우라도 묘지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함부로 침범할 수 없었기에 지하묘지는 로마군의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카타콤베는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순례성지인데요, 이곳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교회 구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들의 무덤과 표식들

이곳에는 그리스도인 외에도 일반 로마 시민들이 묻히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공개되어 있는 카타콤베 중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와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가 가장 유명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에는 이곳을 국가가 관리했고, 현재는 교황청 직속 수도원에서 관리하는데요, 여행객 혼자 미로 같은 카타콤베에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전문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단체로 입장해야 합니다. 예전에 독일의 한 관광객이 혼자 들어갔다가 실종되기도 했다니,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이드와 함께 입장하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지하무덤 중 가장 보존이 잘된 곳인데요, 이곳은 순교한 초기 교황들과 음악의 수호성인 '성 체칠리아'의 묘가 있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성녀 체칠리아'는 3세기의 로마귀족 가문의 처녀였습니다. 그들의 가족은 음악을 사랑하는 집안이었다고 하네요. 기독교의 박해가 계속되면서 ‘체칠리아’도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귀족 신분이었던 그녀는 공개처형이 아닌 열탕에서 죽임을 당하는 형을 받았는데요, 그녀가 열탕에서도 죽지 않자, 다시 참수형을 선고하였지만 3번이나 칼로 내리쳐도 그녀의 목은 잘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너무 끔찍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로 그녀가 강한 신앙심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겠죠. '성녀 체칠리아'는 이 모든 일을 겪고 3일 후에 숨을 거두었는데, 죽기 전까지 찬송가를 끊임없이 불렀다고 합니다. 카타콤베에서 '체칠리아'가 발견되었을 때, 그녀의 시신이 썩지 않고 생생하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녀의 무덤에 그녀의 시신이 발견될 당시의 모습대로 대리석 조각이 놓여 있습니다. 

성녀 체칠리아의 성화와 그녀의 무덤

한편, 가톨릭교에서는 '성녀 체칠리아'를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순교한 11월 22일을 '산타 체칠리아의 축일'지정하고, 여러 가지 음악행사들이 열립니다. 성화에서 그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탈리아의 많은 음악기관들이 '산타 체칠리아'의 이름을 붙입니다. 이중에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 가장 권위 있고 유명한 곳인데,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도 이 음악원의 동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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