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미술교육과 심리치료(미술치료)를 대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싫어하는 주제에 어쩌다 두 번이나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사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전문적으로그림을 분석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림 공부에 손을 놓은 지도 꽤 되었습니다. 선생 일을 하며 종종 범상치 않은 반을 맡게 되면, 새로운 친구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까 해서 어설프게 배운 그림검사(심리검사)를 합니다. 이 글에 나오는 그림은 10년도 넘은 오래된 그림 자료입니다. 한마디로 유통기한이 좀 많이 지난 그림입니다. 제가 쓰는 글은 전문적인 분석이 아니라 개인의 의견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 그림을 볼 때 전 우선 그림의 인상을 봅니다. 우리 찬찬히 그림을 같이 볼까요. 여러분들은 딱 봤을 때 어떤 인상을 봤았나요. 그림은 연인과 같아서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그림에 대한 저의 처음 인상은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긴장이 높구나입니다. 그리고 좀 '날카롭다'입니다. 아이들 그림을 볼 때는 전체적인 느낌, 긴장도와 힘의 배분 등을 보는 인상주의적 방법과 선의 질과 구조, 인물의 배치 등을 하나하나 살펴 의미를 파악하는데 애쓰는 구조주의적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직관적이어서 그림을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다시 위의 그림으로 가서 살펴보면 이 가족의 권력 구조가 보이지 않나요? 제가 보기에 이 가족의 서열 1위는 당연히 아빠입니다. 반면에 엄마는 아빠 사자에 좀 가려져 있죠. 이 그림의 주인공 나는 어떤가요? 엄마보다도 더 돋보이게 그리지 않았나요. 주인공이 생각하는 서열 2위는 '나'가 아닐까요. 주인공 아들은 아빠, 엄마와 나란히 걷고 있고 조금 안쓰러운 남동생 토끼는 뒤에서 열심히 쫓아오고 있네요.
그림을 그린 주인공 친구와 상담한 결과 제가 파악한 것은 이랬습니다. 무섭지만 닮고 싶은 아빠, 내가 지켜줘야 하는 작고 귀여운 동생, 아빠와 사이가 좋은 엄마였습니다. 전체적인분위기가 긴장감은 있지만 가족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란하게 나아가고 있는 서로 노력하는 가족이었습니다.
사실 그림에서 맹수가 이빨을 드러낸 것과 실제 학교생활에서 이 친구의 교우관계가 걱정되어(맹수처럼 싸움이 많았습니다) 부모님과 면담을 실시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부모님의 자세가 바람직했습니다. 특히 아빠가 이 그림을 보며 아들에게 너무 엄하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자 아빠는 면담 후에 휴가를 내고 온 가족과 해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부모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