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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it Sep 09. 2024

공감보다 중요한

관계

온갖 종류의 SNS를 통해 서로 소통하려고 애쓰는 시대이다. 이 소통의 욕구 이면에는 자신에 대해 공감을 원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는 공감을  배우는 단원도 있다. 이 정도면 공감하기 힘들지만 공감이 넘쳐나는 시대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공감을 공부하며 함께 배우는 것이 있다. 바로 '관계'이다. 올바른 관계를 통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 이것을 빼고 공감하며 살라고 가르친다면 차라리 공감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학교도 작은 사회와 같아서 희로애락이 있다. 이러한 희로애락의 대부분은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모두 선하다 믿고 싶지만 때론 어긋나 있는 친구들도 있다. (여러분들도 경험한 봐가 있을 것이다) 차라리 TV에 나오는 금쪽이처럼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친구라면 대응하기가 좀 났다. 때때로 교묘하며 머리까지 좋은 어긋난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신기한 것은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공감이다.


어른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친구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인지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아이일수록 공감해 주는 친구를 곁에 두려 한다. 사실 대부분 그 친구가 이기적인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슈퍼공감능력을 가진 아이 외에는 머리 좋은 금쪽이 주변에 남아 있지 않다.


슬프게도 슈퍼공감이와 머리 좋은 금쪽이는 항상 붙어 있게 된다. 이럴 때 나타나는 일들이 있다. 머리 좋은 금쪽이는 슈퍼공감이를 둘러쌓아 주변에서 고립시킨다. 다른 친구들이 접근 못하게 위협하거나 불쌍한 모습을 보이며 슈퍼공감이가 다른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만든다.


슈퍼공감이가 종종 다친다. 머리 좋은 금쪽이가 본인이 가진 폭력성을 풀기 위해 장난을 가장한 폭력을 가하고 교사에게는 장난이었다며 눈물을 보인다.(경험한 적이 있다) 다치는 곳도 애매하게 잘 보이지 않거나 크게 다쳤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만 다친다.


슈퍼공감이의 물건들이 머리 좋은 금쪽이의 물건이 된다. 좋아 보이는 물건들을 빌린 후 돌려 달라고 말하면 친구사이에 치사하다며 공감이를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욕심나는 물건들을 빼앗고 돌려 받길 원하는 슈퍼공감이를 의리 없는 친구로 만든다.


무섭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지만 20년 넘게 수없이 겪은 일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대해 가르친다. 때론 하나만 주고 두 개를 받을 수 있는 게 친구 관계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를 끊으라 가르친다.


나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지속적이라면 그 친구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다시 생각해 보고, 어른들과 상의해 보라 한다. 그리고 관계를 바로 잡기 힘들다면 만나지 말라고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것, 내가 공감받고 싶다면 먼저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애덤 그랜트는 그의 책 'Give and Take'에서 사람들을 주는 자(Givers), 받는 자(Takers), 주고받는 자(Matchers)로 구분한다. 그중 가장 성공하는 사람이 다행히도 주는자(Giver)라 말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주는자(Givers)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해 실패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현명한 Givers가 되었으면 한다.


여러분들 인생의 관계는 안녕한가?


https://www.youtube.com/watch?v=qHKkxB8HfNw 유튜브 하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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