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3.
아침 출근길, 나만 바쁘니?
아침 출근길은 이상하게도 항상 정신이 없다.
딱히 화장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일어나서 양치하고, 샤워하고, 머리 좀 감다 보면
금방 20~30분 후딱 지나간다. 심지어 머리도 길다 보니 이놈의 머리 말리다 보면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간다.
그렇다고 머리를 자를 생각은 없다.
머리빨이 외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게 머리를 자르는 순간 몬생긴 아줌씨 한 명이 등장할 수도 있어
아직은 아가씨이고 싶은 마음에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아침도 한 숟가락도 뜨지 않는데 이렇게 매일 아침을 전투적으로 보내고 있다.
한 손에는 차키를, 다른 한 손에는 도시락통을 넣은 종이백을 손에 잡고 양손을 쓸 수 없어
대략 감으로 운동화를 신는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면서 신발을 다시 제대로 신기 위해
손을 뻗던 중 대환장할 상황이 발생했다.
신발 뒤축을 꺼내는 상황에서 내 손톱으로 내 살점을 실수로 긁는 상황이 발생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황당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우 씨.. 너무 아파...'
아픈 와중에도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엄지 손가락에 피가 나는 걸 보면서도
양손에 짐이 한가득 있기에 부리나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정신 차리고 손에 생긴 상처를 다시 보니 엄지손가락에 살점이 제법 뜯겨나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만 시간이 없기에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 지하 1층 도착 소리에 맞추어
몸을 내리고 서둘러 차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아픈 손가락 보다 출근이 먼저였다. 급하게 차로 향해 가며 붉그스럼하게 올라온 내 손가락을 보면서 그 순간 문득 내 머리를 스치고 간 한 손이 떠올랐다.
출근길 상처, 우리 엄마 손이 왜 떠오를까?
어렸을 때 엄마는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저녁 해 질 무렵 집으로 달려가며 우리 집 빌라 1층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던 된장찌개 냄새는 아직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런 기억은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저물어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힘든 가계 경제를 돕기 위해 엄마는 맞벌이 전선에 나섰다. 지금이야 부모님 모두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가계 살림을 위해 주부였던 엄마도 나가서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알다시피 아이를 키우던 4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엄마는 다양한 일을 시작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업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의
손은 항상 상처 투성이었다. 당시 엄마가 지나가면서 푸념하는 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혼잣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TV 보기만 좋아하던 어린아이였기에 엄마의 그 말 또한 소파에 누워 별생각 없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엄마의 손과 그 말이 지금 이 순간 떠오른 건 왜였을까?!
30대 중반의 내가 출근길에 오르면서 손의 상처를 보며 당시 40대 중반의 엄마 손이 떠올랐다.
엄마는 나보다 더 정신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했던 천방지축 두 아이 밥을 차려주고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했을 것이다. 더운 여름에는 땀을 잔뜩 흘렸을 것이고, 추운 겨울에는 강추위와 바람에 그대로 노출됐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손에 난 상처 따위는 당연히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정신 차리고 자신의 손을 봤을 때 느꼈을 씁쓸함과 그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바쁜 삶의 고단함 사이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혼잣말이 아니었을까?
그날 저녁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딸 무슨 일이야~"
밝게 웃으며 전화를 받아 주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엄마 손이 떠올라서 연락했어."
멀리 있어서 자주 못 보는 우리 엄마. 다음에 만날 때는 아픈 내 손을 걱정하듯 엄마 손을 바라봐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