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10
첫 '시'자는 무서워!
처음 결혼을 하고 명절에 찾아뵜을 때의 어색함과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위와 장모의 갈등도 분명 있을 텐데 사위들의 성격이 담담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부갈등 케이스가 훨씬 더 많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나도 결혼 전 여러 가지의 '고부 갈등' 스토리를 들으며 약간의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시부모님은 배려심도 깊으시고 따뜻하신 분들이셨다.
아직까지 고부갈등도 없고, 종종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대화하며 돌아오지만
그럼에도 나 역시 초반에는 작은 몇 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결혼을 준비하거나 신혼 초 친구들에도 이럴 때가 있었다고 하니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너도 그랬어?' 하며 공감대가 형성되고는 한다.
30대 결혼 적령기 시기,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신혼 초반이라 아직 시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낯설고 불편한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시부모님의 말씀, 골라 듣는 방법!
시부모님의 말씀, 어떻게 들을까?
결혼 초에 우리는 시부모님 댁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시아버님은 처음 생긴 며느리가 좋으셨던 건지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시부모님 댁에 오는지
방법을 찾아서 말씀 주셨다.
사실 당시에는 회사를 마치고 시부모님 댁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평일 방문은 힘들뿐더러
주말에 남편과 함께 차로 이동하기에 왜 그걸 알려주시려고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시부모님 댁에 가는 방법을 왜 자꾸 알려주시려고 하시는 거지?
자주 오라는 말인가? 아니면 혼자라도 방문하라는 말인가?'
그때는 이런 사소한 말에도 다소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어떤 의도인지도 몰랐고 결혼 초반이라 아직 '시자'에 대한 두려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똑같은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본인도 시부모님께 회사에서 시부모님 댁으로 바로 오는 방법에 대해 듣게 됐다는 사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어른들은 그냥 그걸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구나.'
물론 이 말씀 깊은 곳에는 여러 가지 속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1) 회사를 마치고 바로 본인 댁으로 올 수도 있으니 편하게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2) 자주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
여러 마음이 있으셨겠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 이런 걸 나한테 알려주시지? 나도 엄청 바쁜데 찾아뵈러 오라는 건가?
우리 부모님은 오빠한테 그런 걸 안 알려주는데 왜 그러시지?'
이런 식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사실상 너무 복잡해지고 서로 불행해진다.
아니, 내가 가장 많이 불행해진다.
다른 부모님들도 이렇게 말씀하셨던 케이스가 혹시라도 있었다면 '그냥 어른들은 그러시구나.'하고 넘기면 된다. 시부모님께서 직접적으로 '왜 우리를 자주 찾아뵙지 않느냐, 서운하다.'라고 하지 않은 이상 내가 원하면 찾아뵙고 아니면 안 가면 되는 것이다. 너무 말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분명 부모님들께서는 말씀을 조심하시려고 노력하시는 편인데 오래 부대끼다 보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씀을 편하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보통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한 번 고민해 볼게요! (혹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나름 어떤 의견을 제시해 주셨을 때 나와 생각이 맞다면 '저도 그래요!'라고 열심히 동조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위와 같이 반응한다.
어쨌든 고민하셔서 의견을 말씀하셨을 텐데 누구든 바로 부인하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이럴 때는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숙고하겠다고 말하고, 그 말이 내게 도움이 되면 실천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된다. 보통 부모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잊어버리시는 경우가 많다.
시부모님들의 말씀을 골라 듣는 방법이라고 거창하게 썼지만 쉽게 생각해
표면상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할지, 안 할지는 내가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비슷한 케이스로 시부모님께서 결혼 초반에 '남의 며느리가 어떠하다.'라고 칭찬을 가끔 하신 경우가 있었다. 친구 어머님의 며느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이었지만 자꾸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니 처음에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왜 그 말을 자꾸 하시지? 나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는 건가?! 우리 부모님은 남의 사위를 오빠 앞에서 자랑 안 하는데!.'
그런데 살다 보니 이렇게 생각하면 또 머리 아프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혹여나 시부모님께서 그걸 원하셨던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내 방식'대로 표면상의 말만 듣고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와! 그 며느리 대박이네요! 저도 그 며느리랑 결혼하고 싶네요."
그렇게 하하 호호 웃고 끝이 났다. 그 뒤로 그 며느리 에피소드는 사라졌다.
천천히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
시부모님들도 며느리는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하셨을지 잘 모르셨을 것이다.
아마 어떤 말은 내 눈치를 살피셨을 거고, 어떤 말은 그냥 별생각 없이 툭 하셨을 수도 있다.
다행히 처음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거처 지금의 우리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부모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을 조심해 주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가 더 편하게 어머님 아버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리고 있다. 남편의 잘못도 이르는데 항상 내 편이 되어주시는 두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가끔 남편이 얄미우면 더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도 있다. 재밌는 건 내가 남편 욕을 하면 어머님은 아버님 욕을 하신다. 남편 욕은 같이 해야 재밌는 법이다.
세상에는 이혼숙려캠프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시부모님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게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시부모님들은 자녀를 사랑하고 독립한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랄 것이다.
'너희들만 잘 사면되지, 뭐'
이 말은 시부모님도, 우리 부모님도 즐겨하시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아마 향후 내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어른들이 툭 던지듯 하는 말에 분명 상처받거나 곱씹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초반에는 그랬다. 그럼에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러려니 해왔고, 다행히 그 방법이 잘 먹혀들고 있다.
엄마, 아빠였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해?!'라고 바로 투덜투덜 되겠지만 시부모님께 그러기는 쉽지 않다. 이럴 경우 가끔은 어떤 말은 표면상의 말만 받아들이고 또 어떤 말은 들었지만 못 들은 척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다만 약간의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말씀드리면 보통은 다들 조심하신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렇게 예민한 사항은 없었고 내가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 조심해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