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12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네? 안 받는대요!
식도염으로 병원을 찾았다. 위 내시경을 받고 내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네요. 스트레스 많이 받지 마세요."
"네?"
놀랐다.
근래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스트레스 많이 안 받는대요?"
"(잠깐의 정적)..."
의사 선생님과 나 사이의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3초가 지나갈 무렵.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조심조심) 스트레스 많이 안 받는데도 식도염이 생기나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생각했는데도 식도염이 생기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물론 식도염은 스트레스 외에도 식습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는 안 받긴 했다.
'안 받는데도 이 정도라니.. 씁쓸했다.'
그다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저도 식도염이 있습니다. 의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스트레스라는 것이 '내가 안 받아야지. 혹은 안 받는다.' 생각한다고 안 받는 게 아니에요.
나가서 뛰거나 걷거나 운동을 해야 스트레스도 줄어들거든요.
식도염도 그렇게 없애는 거지 내 마인드로만 없애는 건 힘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친히 본인의 경험담을 꺼내 조언을 주셨다.
공감 화법의 요소들을 모두 넣은 채 말씀을 해주셔서 상당히 위로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공감 치료법>
1) 본인도 식도염이 있다는 사실
2) 자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업종이라는 공감대
3) 마음으로 안 받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치료법
그날 깨달았다.
'스트레스는 안 받겠다고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몸이 멀쩡해야 마음도 개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다시 식도염이 나아지고 까묵까묵하고 평소와 같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또 식도염이 찾아오거나 또 우울함이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엄마는 말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 내며 답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거 어떡하냐고!."
엉덩이 팡팡 당할 못쓸 짜증을 엄마에게 부리고는 전화를 끊고 곧 후회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마음먹기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음먹기로 모든 것을 초탈할 만큼 나의 멘털은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 뒤로 여러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나갔다.
나처럼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라면 이것저것 다 모르겠고 일단 몸이 멀쩡해야 한다.
멀쩡한 몸에 정신도 말짱해진다.
육체와 정신은 절대 절대 떨어질 수가 없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확실히 정신이 맑아졌다.
유산소를 하든, 수영을 하든, 필라테스를 하든, 헬스를 하든, 상관없다.
어떤 운동이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거나 본인 성향 자체가 예민하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해 줘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머리를 썼다면 이제 더 이상 머리 쓰는 활동은 멈추자.
몸을 써야 몸이 쉰다고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좋아하는 유튜브를 들으며 산책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티비를 깔깔 웃으며 보면서 유산소를 하거나
가기 싫음 마음을 꾹 참고 필라테스를 다녀오고 나면 몸이 피곤해 머리가 멍해진다.
이때 오히려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정신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나가자, 딴생각하지 말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진짜 피곤한데요? 어떻게 운동하죠."
나도 그렇다. 피곤해서 뒤질 것 같은 순간도 많다.
씻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안 씻고 잘 수도 없다.
귀찮으니 폰만 만지작만지작하고 시간을 흘러 보낸다.
그렇게 2~3시간 흘러 보내고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휴.. 이제는 씻어야지.'하고 씻고 잘 때가 많았다.
그런데 뇌는 이걸 휴식으로 느낄까?
전혀 아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봤는데 또 스마트폰을 본다.
뇌 입장에서는 '이 새끼 또 나를 혹사시키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바로 운동복을 입고 나간다.
산책을 하든지, 헬스장을 가든지, 필라테스를 가든지 어디든 향한다.
피곤해도 일단 간다.
'한 10분만 쉬다가 갈까?' 그렇게 해봤는데 절대 안 간다.
그냥 나가야 한다.
딴생각하지 말고 일단 나가서 10분만 버티자.
10분까지는 진짜 피곤하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다.
그러다 10분이 지나면 몸이 깨기 시작한다.
'오! 운동하나 보다. 근육 좀 깨워줄게.' 하고 근육들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10분이 지나면 몸이 정신 좀 차린다.
20분이 지나면 근육도, 육체도 꿈틀거리며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뇌도 '이제 좀 쉬나 보네.' 하며 마음을 평온히 가진다.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 등 각종 좋은 호르몬들이 나온다고 한다.
가는 게 가장 고난도이고 가기만 하면 대충 해도 된다.
일단 오는 게 중요하다.
나는 헬스를 가더라도 절대 오래 하지 않는다. 30분 정도하고 도망간다.
어떤 날은 열심히, 어떤 날은 대충 할 때도 있다.
필라테스는 강습이라 50분을 빡세게 하지만 헬스는 오래 하면 다음에 또 갈 때
내 뇌가 '이 새끼 또 가서 빡세게 하려고 하네. 나 안 가.!' 이럴까 봐 조금씩 조절한다.
그럼에도 일단 가는 습관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인데 이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다. 놀랍다!
우울할 때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뛰고 오면 오히려 개운해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소파에 누워서 폰 본다고 스트레스 풀리지 않는다!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일단 운동화 끈 묶고 나가자!
우울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나갔던 내가 돌아올 때는 소름 돋게도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 모습에
나 자신도 놀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트레스는 마인드로만 바뀌지 않는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가자! 직장인들이여!
- 실제 경험해 본 30대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