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리운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퇴근 후 서울 집에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차에 시동을 건다. 부모님 댁이 있는 경기도 안성으로 가려면 1시간 조금 넘게 운전을 해야 한다. 너무 늦게 내려가면 피곤하니 채비를 서두른다. 밤늦은 시간에도 차로 붐비는 서부간선도로를 여차저차 지나서 수원광명고속도로를 달린다. 출발한 지 절반을 조금 넘은 시점,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허기를 달랠 겸 한산하고 고요한 오산휴게소로 진입한다.
밤 9시 정도 되었을까. 메뉴가 뭐가 있는지 살펴보지만 다른 점포들은 문을 다 닫았고 아직 영업 중인 점포는 라면 코너 하나뿐. 옆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배를 채우려면 라면이 낫겠다 싶어 만두라면 하나를 주문했다. 그 시간에도 가족 단위 손님들을 포함해 십 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기다리면서 딱히 할 것도 없는 참에 옆 테이블의 꼬마 아이 하나가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어설픈 삼촌 미소로 마냥 구경했다. 그러던 차에 어떤 사람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화구의 뜨거움을 온 얼굴로 받으며 혼자 바지런히 라면을 만들고 계시던 조리사님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을 장면인데 그 순간에 유독 잔상이 많이 남았던 건 왜일까. 1초 만에 느낀 직감. '아, 외할머니와 닮았구나, 그분이 그리워서였구나'.
몇 년 전, 외할머니는 부산의 어느 병원에서 소천하셨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당신께서는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어려웠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머무셨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까랑까랑했던 목소리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난 이후부터는 그 힘을 살짝 잃었더랬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100세를 목전에 둔 사람이라면 인생과 작별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터, 그건 주변의 어떤 이라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마음은 머리보다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차가 좀 있는 모양이다. 머리로는 인정하되, 마음으로는 부정하고 싶은 오묘한 심리. 나는 그렇게 머리로는 외할머니의 부재를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잔상을 남겨두었다.
외할머니는 요리를 아주 잘하셨다. 우리 가족을 비롯해 이모네 식구와 사촌들까지 열 명 가까이 되는 인원들의 식사를 뚝딱 차려내셨고 맛 또한 일품이었다. 그중에서도 겉절이 김치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김치 중 가장 맛있었고 앞으로도 이걸 능가할 김치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물론 김치만 맛있는 건 아니었고 모든 음식이 다 기깔나게 맛있었다). 지금도 어느 식당에 가서 맛있는 김치를 먹게 되면 '이 김치도 맛있지만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겉절이 김치가 훨씬 맛있는데...'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생전에는 불자(佛者)로서, 다니시던 절에서 자주 음식을 만드셨다고도 들었다. 외할머니가 만드신 음식을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헛헛하다.
휴게소에서 라면을 만들던 조리사님은 풍채라든가 이미지에서 외할머니와 오버랩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니 그 순간에 외할머니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더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 건,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다리가 성하셨다면 저렇게 누군가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었다. 비록 늦은 밤 시간에 홀로 음식을 만드는 게 고되고 외로운 일일지라도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세상에 부재한 사람의 목소리는 산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라면을 먹다가 뜬금없이 울컥한 건 그 때문이었다. 갑자기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리움. 그게 평소보다 라면을 늦게 먹게 만든 이유였다. 돌아가실 때는 휴면 상태였던 슬픔과 그리움이 그때서야 깨어날 게 뭐람. 가까스로 면발을 넘기고 국물까지 싹 비운 후 퇴식구에 그릇을 반납하면서 조리사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휴게소를 떠났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을 때 100% 잘해줬어도 그가 부재한 이후의 시간에는 때때로 후회와 그리움이 찾아온다. 그건 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100% 잘하고 있지도 않을 테지만. 그러니 더더욱 회환과 아쉬움, 미련이 많이 남게 되는 거 아닐까.
오산휴게소에 다시 들르더라도 그때의 조리사님을 다시 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한편에 오래오래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십사 응원하는 마음을 남겨두고 싶다. 추운 겨울날 온기 가득한 라면 한 그릇으로 외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해 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