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거의 다 비워진 구달[1] 맥주가 놓여있었다. 노트북도 닫아둔 채로 고요함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따금씩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가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규칙적으로 내뱉는 한숨소리가 빈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였을까,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여전히 에어비엔비를 전전하고 있었고 퇴직금은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 희망과는 다르게 상황은 처참했다. 꼭짓점을 이루고 있는 집, 취업, 은행 문제는 어느 것 하나 풀리지 않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폭탄 돌리기를 하는 듯했다. 샴페인 지역으로 가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생존확률이 높은 선택지였다. 전자레인지 음식으로만 1년을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러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떨어진 자존감으로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텍스트가 채워져있는 핸드폰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남은 맥주를 비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현신님, 며칠 전, 파리에서 진원 누나랑 만났던 오동환이라고 합니다. 저한테 말씀해 주셨던 보르도 에어비엔비 하시는 분께 혹시 방 있는지 물어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보내고 나서도 걱정은 한 바가지였다. 답장이 안 오면 어떡하지부터 연락은 해봤는데 감당하지 못하게 비싸거나 방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까지. 소개해 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날을 듯 좋았던 기분은 다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동환님, 그럼요,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물어볼게요'
"동환아 여기!"
"어 누나 안녕하세요. 와 진짜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러게. 잘 지냈어?"
진원 누나와는 오래 보고 지낸 사이였다. 처음 객원기자로 활동할 당시에 선배 기자로 만났다. 처음부터 잘 챙겨줬고 그만큼 잘 따르게 되었다.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2]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로 오는 김에 파리에 며칠 머물다 내려가기로 했고 이 막간의 여행에 보르도 촌놈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누나는 프랑스 생활을 오래 했기에 파리 구석구석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파리로 올라와 누나를 만나기 위해 간 곳은 외곽에 위치한, 진작에 추천을 받아 프랑스에 처음 온 5일 동안 방문했었던 네고시앙[3]이 운영하는 창고형 와인샵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샵 전체가 노다지로 보였고 잘 익은 적당히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들을 눈에 보이는대로 집어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저 입맛만 다시다 나왔다. 파리까지 떼제베[4]로 세 시간 밖에 안 걸렸지만 보르도에서 오전 느지막이 출발한 탓에 얼마 안 있어 날은 저물어 버렸다. 와인샵에서 나와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마레 지구에서 저녁을 먹고서는 천천히 걸으며 파리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와인 한잔해야지?"
"그럼요 어디가 좋을까요?"
"글쎄 어디 재밌는 데 있지 않을까? 파리인데?"
맥주 한 잔만 간단하게 했던 터라 와인 한잔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르 바라땅이라는 곳에 발길이 멈췄다.
"봉수와. 예약했나요?"
"아뇨, 저희 두 명인데 많이 기다려야 하나요?"
"모든 자리가 예약이 되어있는데 금장 자리가 날 수도 있어요. 잠깐 기다릴래요?"
"네!"
배가 엄청 고픈 상태도 아니고 아직 시간은 일렀기에 잠깐 기다렸다가 한 잔만 하고 돌아갈 요량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신세한탄을해왔다. 처음 프랑스에 오겠다고 호기롭게 선포했을 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가라고 충고해 줬던 사람이 바로 진원 누나였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꼬치꼬치 캐물어 귀찮게 하기 싫은 괜한 자존심이 또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던 터라 살고 싶은 부동산만 몇 군데를 말 그대로 보기만 하고 보르도로 왔었다. 그때 말을 듣고 왔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이지 않았을까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에 안타까움이 차오를 때쯤 바라땅의 구석에 아주 좁은 2인석에 앉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은 좁은 공간에 작은 사이즈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20명 남짓 들어갈만한 작은 곳이었다. 마치 나폴레옹의 모자같이 생긴 혹을 달고 있는 혹돔 조각상이 식당 중앙 벽면에 걸려있었다. 작은 바 앞에는 의자가 2개뿐이었고 그 옆으로는 2인 테이블 몇 개가 바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연인들이 함께 앉아 볼을 붉히기도 하고 남자 친구 넷이서 둘러앉아 맥주마냥 호탕하게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이제는 일자리를 구한 자녀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가족들로 떠들썩했다. 각자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식당의 이름[5]처럼 시끌벅적한 그런 공간이었다. 좁은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앞치마를 둘러맨 덩치 큰 사내가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자신의 몸만 한 크기의 메뉴판을 들고 성큼성큼 좁은 길을 뚫고 들어왔다.
"자,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오늘 애피타이저로는 테린 드 깡빠뉴와 고등어 타르타르, 메인으로는 히 드 보나 넙치 요리를 추천합니다."
"저희가 식사는 간단하게 하고 와서요, 와인만 마시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와인 리스트는 저기 벽 쪽에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음... 화이트를 먹고 싶은데... 알자스 어때요?"
"아 알자스 좋죠. 2012년 빈티지라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는데 여전히 신선하고 복합미가 좋아요."
"그럼 알자스 한잔 주시구요, 동환아 넌 뭐 마실래?"
"저는 레드 중에서 추천해 주세요."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가벼운 와인, 무거운 와인?"
"음 좀 무거운 걸로요"
"그렇다면 저희 얼마 전에 들여온 와인이 있는데 엄청 좋은 와인 있어요. 요한 모헤노의 레 히보라고 랑그독 쪽에서 와인 만드는 생산자인데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와인을 어찌나 잘 뽑는지, 방문해 보고서 바로 '이거다' 했던 와인이라 바로 저희 가게로 들여왔죠."
"오 좋네요 그럼 그걸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시시각각 바뀌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그 맛을 가늠할 수 없기에 그 와인을 잘 아는 사람 추천에 맡기는 게 속이 편하다. 주변을 다시 둘러봐도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종업원들은 바쁘게 와인과 음식을 들고 돌아다녔지만 친절했고 손님들은 모두가 편안하게 와인을 즐겼다. 얼마 안 있어 주문한 와인이 한 잔씩 나왔고 마침 그때 바 자리가 났기에 그쪽으로 옮겼다. 바 안에서는 흰머리를 뒤로 멋스럽게 넘기고 위아래 패턴이 다른 체크무늬 옷을 입은 멋쟁이 어르신이 와인을 따고 있었다. 능숙한 솜씨로 소믈리에 나이프의 스크류로 코르크를 퐁 하고 따버리더니 디캔터를 한 손에 잡고 거칠게 디캔팅을 하고서는 누가 봐도 두 잔 넘는 분량을 남기고 손님에게 내보냈다. 그 광경을 보고 눈이 마주친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음 주문이 들어왔는지 냉장고에서 병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스파클링 와인병을 꺼내더니 디캔팅을 반 정도 하고서는 잔에 따르기 시작하는데 어느샌가 우리에게 와인을 추천해 준 덩치 큰 직원도 와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세상 진지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가 조금 코믹해 보였다. 이번에도 한 잔은 넘는 분량을 남기고 손님 테이블로 와인을 서빙해주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던 손님 테이블에서 한 명이 잔을 들어보이며 바의 어르신에게 윙크를 날리자 조금 전에 남겨둔 와인을 잔에 따라 화답으로 잔을 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신비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놓이고 재미있는 공간에서 마음껏 웃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앉은 바 옆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아마도 와인을 보관하는 공간과 주방이 있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종업원들이 음식을 날라왔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 종업원이 추천한 넙치가 지나갈 때마다 그 향과 비주얼 때문에 넋이 나간 채로 보곤 했다. 다음에는 식사를 하러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다 비우고 아쉬운 여운이 남아 리스트에 없던 플러리[6] 한 잔을 추천받아 마시고는 피곤함이 몰려와 자리를 떴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했던 하루였던 걸까,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파리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서 본 마을로 가는 날 아침이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서 나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며 오페라 쪽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 '포 14'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현신 님을 만나게 되었다. 진원 누나와는 오래전 프랑스에서 교육 과정을 같이 들으며 친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맡아 진행하는 업무를 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 갔었던 앙제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하며 이번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에도 참석하여 어차피 파리를 거쳐가다 보니 함께 식사를 하고 본으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호탕한 성격의 현신님은 내가 보르도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말에 갑자기 생각에 잠기더니 예전에 행사 때문에 보르도에 가서 에어비엔비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집이 방도 빌려줬던 것 같다며 알아봐 주겠노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아직 보르도에 있는지, 방을 빌려주고 있는지, 그렇다 해도 방이 비어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나도 이제는 희망을 많이 내려놓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큰 도움의 손길이었다.
말뿐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밤이 깊어 다음날 물어봐 주겠다던 현신님은 바로 연락을 해주셨고 내게 집주인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다 말해뒀으니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잠시간 마음을 가다듬고서는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장-아르노, 저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현신 님 소개로 연락드렸습니다. 보르도에서 지낼 집을 구하고 있는데 당신이 방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집을 보러 가도 될까요?'
프랑스에서 문자를 보내려면 편지처럼 뭔가 형식을 갖춰서 보냈어야 했나 하고 걱정을 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한 시간이 되도록 답변이 없었다. 내가 잘못 보냈나 싶어 내용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번호도 확인해 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아무리 못 알아들어도 부딪혀보자 생각하고 전화를 걸려고 번호를 누를 때 답신이 왔다.
'가능하네. 내일 네시 괜찮은가?'
'네 내일 네시까지 갈게요. 주소 보내주시면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메트르 장 53가로 오면 된다네.'
현신 님 기억으로는 월 550유로였었고 말만 잘 하면 50유로는 깎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 정도면 지금 이렇게 에어비엔비 전전하는 것보다야 당연히 저렴할뿐더러 직장을 구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밤새 앞으로 일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잠을 거의 설치다시피하고 다음날이 되어 문자로 받은 주소로 향했다.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쌩-미쉘 트람역에서 C 선을 타고 부르고뉴의 문[7] 역에서 A 선으로 갈아타 20분은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다행히 트람역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다. 주소가 맞나 기웃거리던 찰나에 흰머리에 안경을 쓴, 뭔가 영국인 같은 분위기의 배 나온 할아버지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봉주르. 자네가 다니엘인가?"
"아 네 맞아요 다니엘. 장-아르노 씨인가요?"
"맞다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안쪽으로 들지."
얼떨결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나누고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은 다소 특이한 구조였다. 우선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 바로 문이 있는 게 아니라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문이 있었고 거실 공간이 나왔다. 2층이라고 생각하는 1층에 TV가 놓여있는 거실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주방이 있었고 뒤쪽으로 이어진 마당으로 연결된 테라스 공간과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거실 맞은편에는 장-아르노의 서재가 있었고 그 앞에는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었다. 내가 머물 공간은 지하 같은 1층이었는데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방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 별도로 구분된 공간에 화장실 겸 샤워실[8]이 있었다. 방은 딱 적당한 크기였다. 퀸 사이즈 배드가 하나 놓여있었고 맞은편 벽에는 오래된 느낌의 고가구 선반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주방에서 연결된 뒷마당이 바로 보였다. 푸릇푸릇하니 경관이 참 좋았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세탁기와 빨랫줄이 있는 창고 공간이 있었으며 오른편 벽 하나를 두고 차고가 있었고 반대편 문으로는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집은 꽤나 컸다. 함께 살던 두 아들은 장성하여 독립하였고 남는 방으로 장-아르노는 에어비엔비를 하거나 방 렌트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에어비엔비는 하지 않고 방 렌트도 시기상의 문제로 아직 누구도 들어와 살고 있지 않았다. 주방 공간도 보여줬는데 큰 냉장고와 토스터, 가스레인지와 오븐까지 모든 게 다 갖춰져있었고 자신은 주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원한다면 마음껏 쓰라는 말을 해주었다. 정말 좋았지만 550유로는 아직 직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이거보다 안 좋아도 되니 월 400유로면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보르도면 사실 지방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협상의 시간이었다.
"괜찮네요. 렌트가 얼마라고 하셨죠?"
"현금으로 나한테 직접 주는 조건으로 550유로라네."
"네. 근데 문제는 제가 지금 직장을 구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집세가 부담이 좀 돼서요. 혹시 500유로로 하는 건 안될까요?"
"안되네. 550유로도 사정을 보고 내가 제안해 주는 가격일세. 이 근처에 펠레그랑 병원을 보았나? 그곳에서 인턴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다네. 자네 아니어도 곧 그들이 550유로를 내고 이곳에 올테니 그 이하는 안되네.
돈 얘기를 하자마자 정색을 하고 너 아니어도 올 사람 많다는 말과 위압감에 주춤했다. 내게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곳을 잡던가 아니면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뿐이었다. 답은 뻔했다. 이곳이 비용 측면에서도 훨씬 저렴한 편이었다. 50유로라도 줄였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나 단호하게 나오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좋아요. 나한테 조금 비싸긴 하지만 여기서 지내는 걸로 할게요. 언제 이사 올 수 있죠?"
"이번 주는 내가 잠시 보르도를 비워야 하는 일이 있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오는 걸로 하지."
"네 좋아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봬요."
"좋아. 조심히 들어가게."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세 가지 중 하나가 막 해결된 참이었다. 이걸로 샴페인으로 이동하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오전에 다시 연락이 왔지만 결론은 같았다. 매트리스에 살며 전자레인지 음식을 먹고 살든, 트로아 지역에 집을 구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스랑 얘기해 본 결과 차량 지원은 가능하다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보르도에 집 구하는 데에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무턱대고 샴페인으로 옮기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보르도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네시쯤 집을 보고 다시 트람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목숨줄이 연장되는 것을 느끼며 맥북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낯선 제목의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샤또 라베고스 일자리 제안'
심장이 또 한 번 엄청난 기세로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쥐고서 메일을 열었다. 파비앙이라고 소개한 이는 내가 보낸 이메일을 델핀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얼마 전에 전달받았다며 제안할 만한 일자리가 있을 것 같다며 인터뷰를 보고 싶다고 적어왔다. 정말 이때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기뻤다. 대학생 시절에 준비하던 회계사 시험에 한 번에 붙는다는 헛된 상상을 할 때도 이렇게 기쁠 것 같진 않았다. 인터뷰 보러 가겠다고 바로 답신을 보내고 와이너리 정보에 대해 찾아볼 때쯤 이번에도 역시 06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다니엘 맞죠? 메일 보냈던 파비앙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인터뷰가 언제 가능하죠?"
"저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면 내일모레, 목요일 오전 9시 어때요?"
"좋아요 목요일에 봐요"
"안녕"
전화를 끊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 소리를 질러댔다. 두 달이면 사실 길다면 길지만 짧다고 볼 수도 있는 기간이지만 그동안 30년 살며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좌절을 느껴왔던 것 같다. 취업이 안되어 졸업을 연기하고서 준비를 하고 그래도 안돼서 눈을 낮추던 때에도 지금에 비해서는 훨씬 평온했던 것 같다. 준비하던 시험에 말도 안 되는 성적으로 과락 낙제를 받았을 때도 그저 담담했었다. 정말 가기 싫었던 중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울었다고는 하지만 좌절감은 없었다. 그렇게 평탄하게 살아오다 서른이 되어 처음 맞은 상황에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질 때쯤 정말 소설처럼 모든 게 다 해결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 파리에서 현신님을 만나고 진원 누나와 셋이 길을 걸을 때였다. 발에 기분 나쁜 물컹한 촉감이 느껴져 아래를 봤더니 개똥이 있었다.
"오 왼발로 개똥을 밟으면 행운이 찾아온대요."
생각해 보니 그날 개똥을 밟은 발이 왼발이었던 것 같다.
[1] 구달(La Goudale): 프랑스 맥주.
[2]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Grands Jours de Bourgogne): 부르고뉴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가장 큰 시음 행사. “5일간 쏟아지는 부르고뉴의 별들” 참고
[3] 네고시앙(Négociant): 와이너리로부터 와인을 사서 현지 거래처와 전 세계 거래처로 판매하는 중개상. 규모가 크며 재고가 많아 올드 빈티지도 많은 편이다.
[4] 떼제베(TGV) : 프랑스 고속철
[5] 바라땅(Le Baratin): 프랑스어로 ‘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6] 플러리(Fleurie): 보졸레 지역의 10대 위대한 마을 중 하나이다.
[7] 뽁뜨 드 부르고뉴(Porte de Bourgogne): 트람 C 선과 A 선의 환승역
[8] 화장실 겸 샤워실: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가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