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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도농부 Oct 21. 2022

8박 9일 + 16병 = 샴페인

 2주간의 잊지 못할 캠핑카 투어가 끝났다. 엘리도 여독 때문에 피곤했고 나는 바로 다음 날 여행을 위해 짐을 싸야 했다. 일주일 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엘리가 중국에 가 있을 예정이라 미리 작별 인사를 했다. 제레미보다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많은 도움을 줬던 프랑스 생활 가장 친한 베프였다. 와인 행사가 열릴 때는 항상 함께 다녔고 장-아르노 집에 살 때는 여러 번 초대하여 요리도 해줬다. 이번 캠핑카까지 함께하며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와도 다시 프랑스에서 보자는 인사를 한 뒤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출발부터 문제가 생겼다. 렌터카 사무실에서 카드로 결제할 때 디파짓이 필요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현금을 뺐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해 아비뇽행 열차를 탔을 텐데 여기서 차를 빌리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크게 당황하는 나를 보며 직원은 은행에 연락해보라며 알려주었고 30분 정도 패닉 상태로 은행 직원과 통화 한 뒤 다행히 부족한 금액만큼 한도를 풀어줬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선 2층 인도장으로 가 작디작은 클리오 오떵틱에 짐을 싣고 아비뇽으로 출발했다. 6시간을 꼬박 달려 아비뇽역에 도착했을 때는 4시 40분이었다. 3시 정도에 만나기로 했었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늦게 도착했다. 첫날은 아무 일정도 할 수 없어 에어비앤비 숙소로 가 짐을 풀고 장을 봐와서 저녁을 먹었다. 수제로 만든 오리 테린[1]을 사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장-아르노가 가족과의 점심 식사 때 했던 호띠 드 뵈프를 했다. 1년 만에 뵌 어머니에게 재잘거리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샴페인을 질리도록 먹을 예정이었다. 캠핑카 투어 때 들른 샴페인 지역의 와인샵에서 사 온 샴페인 12병을 테이블에 올리니 영롱해 마지않았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나름 명확했다. 남프랑스에서부터 부르고뉴, 샴페인을 여행하며 지역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으면서 매일 저녁 샴페인만을 마시는 것이었다. 총 8 밤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데 캠핑카 멤버들의 알코올 분해 능력에 익숙해져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매일 밤, 샴페인 두 병씩을 비웠고 결국 이틀 치가 부족해 중간에 들른 샵에서 4병을 더 사서 8박 9일간 16병의 샴페인을 비웠다. 첫날은 르끌레르 브리앙, 레제르브 브뤼와 드 수자, 그랑 크뤼 레제르브 브뤼 블랑 드 블랑[2]을 마시곤 잠에 들었다.




 아들이 있는 곳에 오셨을 때 해드릴 수 있는 건 그동안 즐겼던 것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만 경험시켜드리는 게 아닐까. 어제 둘러보지 못했던 아비뇽 도시를 다시 둘러보고 캠핑카 때 갔었던 교황청에도 방문했었다. 그리고 시장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로컬 시장을 찾아 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인데 내게 신기하게 보인 곳이 하나 있었다. 과일도 팔고 생선도 팔고 고기도 팔고 야채도 파는 시장 한가운데 와인바가 떡하니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시장 가운데에 막걸리 파는 곳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일 거라 그리 이상하진 않았지만, 내 눈엔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한잔하고 싶었지만,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차 자리가 없어 다른 가게에서 필요한 것들만 사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선 프랑스 생활 내내 나의 소울 푸드였던 케밥을 사서 어머니와 함께 먹었다. 뽀이약 마을에서 먹었던 그 말도 안 되게 맛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케밥의 생명은 알제리안 소스라며 소스를 잔뜩 뿌린 케밥을 한 입 베어 물더니 만족하셔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구석구석 관광지들을 충분히 구경하고선 어제 묵었던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오전에 시장으로 가 사 온 새우와 쌩-자크[3]를 굽고 두껍게 썬 잠봉과 멜론, 그리고 어제 남은 고기까지 곁들여서 브누아 라아예, 블랑 드 누아, 프랑크 봉빌,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 엑스트라-브뤼[4] 샴페인들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캠핑카 때 아르마냑 생산자가 줬던 작은 튜브 샘플들을 꺼내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프랑스가 보고 싶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고흐의 도시, 아를을 들렀다. 이번에 처음 가 본 곳이었고 미술은 잘 몰랐지만, 고흐는 알았기에 궁금하던 도시였다. 처음 발을 내딛자마자 단번에 도시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폐허”였다. 겨울철 스산한 날씨도 그렇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아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스러져가는 로마의 유적들과 사람 없이 고요한 도시는 조금은 무서운 느낌을 줬다. 아를에서 유명한 유적지들이 있어 돌아다니는 데 문득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와인과 상관없이, 행사를 참석한다던가 와이너리를 간다든가 하는 것 없이, 그저 ‘여행’을 했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원래 여행이라는 것이 이렇게 알려진 곳들을 찍고 다니는 것이었었나. 내가 원래 어떻게 여행했었지? 이런 생각들이 문득 들었고 여행 기획을 잘못했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죄송스런 마음이 생겼다. 정작 어머니는 즐거워하셨고 매일 저녁 아들과 함께하는 샴페인 또한 좋아하셨다. 저녁으로 엉트르꼬뜨를 하고 프레데릭 사바흐, “라꽁쁠리” 프르미에 크뤼 엑스트라 브뤼와 아그라빠흐 에 피스, 그랑 크뤼 “떼루아” 블랑 드 블랑 엑스트라-브뤼[5]를 마셨다. 마침 신년이 되며 멀리 불꽃놀이가 시작되었고 피곤했던 탓에 금세 잠이 들었다.




 전날 아를에서 마르세유까지 달려와 숙소를 잡고 장을 보러 나갔을 때 이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에 눌렸다. 별다른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는데 도로는 어두웠고 전체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마르세유는 싫어’라는 인상이 가득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주위를 살피며 차를 끌고 첫 목적지로 향했다. 롱샹 궁전이라는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앞쪽으로 걸어 내려왔는데 이 궁전의 정면을 보는 순간 어젯밤부터 이어져 온 마르세유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한 번에 없어졌다. 거대한 규모의 궁전 앞으로 세 여신의 조각상이 위엄을 뽐내며 자리 잡은 분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층층이 내려와 거대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입이 딱 벌어지는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마르세유 특유의 흉흉한 분위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롱샹 궁전뿐만 아니라 노트르 담 드 갸르드, 마르세유 대성당의 아름다움에 무장 해제되어 황홀해하고 있었다. 어제 갖고 있던 여행에 대한 고민도 깨끗이 잊어버리곤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마르세유 특산, 부이야베스[6]를 먹고 싶었지만 한참을 일찍 예약해야 한다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해산물을 먹어야겠다며 구항구 근처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 중 한 곳에 가 생선구이를 먹었다. 다음날 부르고뉴로 이동하기에 거리가 좀 있었으므로 엑성프로방스에 숙소를 잡았다. 1월 1일에 여는 곳이 없어 장을 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가져온 재료들로 한식을 하고선 조르주 라발, 갸렌느 프르미에 크뤼와 호세 미쉘 에 피스 스페셜 클럽[7] 2008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행의 중반인 닷새째 아침이 밝았고 부르고뉴 디종 마을로 향했다. 5시간이 넘도록 운전해야 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중간중간 수도원 건물이나 과자 공장 등을 눈에 보이는 대로 방문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130km로 달리고 있었고 내 앞으로는 차량 3대가 줄지어 있었다. 조금은 피곤한지 눈이 감길락 말락 하고 있어 다음 쉼터가 나오면 잠깐 눈을 붙이자고 할 그때였다. 가장 선두에 있던 두 차량이 쾅 소리를 내며 충돌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내 뒤쪽에는 노란색 차량이 아주 약간만의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충돌한 두 대에 이어 바짝 따라가던 세 번째 차량도 방향을 틀었지만, 너무 가까웠던 탓에 또 한 번 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지금 내가 브레이크를 밟아 앞 차와의 추돌을 피한다고 쳐도 뒤차가 나를 박으면 나는 과실이 없는가? 피해가 얼마나 나올까?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세 번째 차량은 다행히 2차로 방향으로 튕겨 나가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쪽으로 핸들을 꺾고 있던 내 차는 앞부분이 종이박스마냥 찌그러진 두 번째 차량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노란색 차량은 앞에서 충돌 소리가 나자 잽싸게 차선을 변경해 나와도 부딪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1초 남짓 하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며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이 없었고 어머니도 놀라셨지만, 다친 곳 없이 괜찮으셨기에 그대로 디종까지 올라갔다. 체크인하고서 놀란 가슴은 샴페인으로 진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어제 다 못 먹은 찌개와 찹스테이크를 구웠고 매일 2병씩 마실 줄 몰랐던 나는 급하게 체인점 니꼴라[8]에 가서 사 온 뵈브 클리코 빈티지 브뤼 2008와 도츠 브뤼 클래식 두 병을 마시며 아무 일 없음에 감사했다. 그동안 1년간 프랑스에서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며 알게 된 소규모의 품질 좋은 생산자들의 샴페인만 먹으려 했지만 급하게 구하다 보니 대중적인 샴페인 두 개가 섞여버렸다.




 엿새째, 디종에서는 기대했던 시토 수도원과 공작의 궁전이 공사 중이었기에 싱겁게 성당들과 그 유명한 디종 머스타드 부띠끄만을 갔고 아쉬운 대로 와인샵 몇 곳을 구경하고는 샹페인 지역의 랭스로 향했다. 이곳에서 2박을 예약한 숙소가 하이라이트였는데 첫날은 에글리-우리에, 브뤼 트라디씨옹 그랑 크뤼와 캠핑카 투어 때 무한 감동을 줬던 자크쏭, 데고르주멍 타르디프 뀌베 735[10]를 마시며 빠삐요뜨 드 쏘몽[11]을 해 먹었다. 아, 빠삐요뜨 드 쏘몽. 원래 요리를 곧잘 하던 게 아니었지만 프랑스에 왔으니 프렌치를 도전해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찾아보는 레시피들은 항상 별다른 손이 안 가는 간단한 것들이었다. 장-아르노에게 해줬던 라빵 아 무따흐드도 그중 하나였고 빠삐요뜨 드 쏘몽도 정말 간단하지만 맛이 너무 좋은 요리였다. 종이 호일에 연어와 야채들을 싸서 소스를 뿌리고 향신료를 더해 오븐에 굽기만 하면 끝이었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맛은 너무 훌륭해 어머니도 좋아하셨다.




 이레째, 어머니께 가장 보여드리고 싶었던 샴페인 투어였다. 다른 날들은 관광지들을 돌아다닌 데 비해 이날만큼은 와이너리 투어를 잡아두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캠핑카 투어 때 환대해줬던 떼땅져[12]였다. 도심에 있어 가기 편했던 이곳에서는 지난번과 달리 일반 방문으로 신청해서 여러 관광객들과 함께 투어를 진행했지만, 전문가 투어만큼이나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어머니는 샴페인 와이너리 투어가 처음이라 모든 것에 신기해하셨었는데 특히나 샴페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해주니 좋았다고 하셨다. 지하 셀러 투어가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와 모든 이들이 떼땅져 브뤼 레제르브[13]를 한 잔씩 받아 들고 마시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다른 샴페인들도 추가 비용을 내고 테이스팅이 가능했는데 프랑스에 와 가장 행복하게 마셨던 샴페인을 맛보여드리고 싶어 꽁뜨 드 샹빠뉴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14] 2007을 추가하여 나눠 마셨다. 다른 훌륭한 샴페인도 물론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샴페인을 딱 하나 꼽으라면 내게는 꽁뜨 드 샹빠뉴였다. 만족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간 곳은 또 다른 캠핑카 투어 때 방문했었던 샴페인 하우스인 앙리 지로[15]였다. 이곳은 샴페인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일반인도 무료로 투어를 진행해주는 희귀한 곳이었다. 지난번 만났던 담당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지난번보단 짧게 해달라는 요청에 간단히만 설명하고 바로 테이스팅 룸으로 향했다. 에스프리 나뛰흐 브뤼와 퓌 드 쉔 MV13 브뤼, 담-잔 로제[16], 그리고 달콤한 하타피아 샹프누아[17]인 솔레라[18]까지 4가지 와인을 테이스팅했다. 지난번 여행에 이어 이번에도 잘 의전해 준 두 와이너리에 고마움을 느끼며 또다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많은 샴페인 하우스의 건물들이 몰려있는 샴페인 거리로 향했다. 세 번째 약속에 앞서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돔 페리뇽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선 꼴라흐-삐꺄흐[19]로 향했다. 지난번 캠핑카 투어 때 우리와 함께했던 승화 누나에게 잠깐 들러도 되냐고 연락했고 흔쾌히 오라고 초대해주었다. 한국어로 설명해주시니 어머니도 한결 더 편하게 들으셨다. 뀌베 셀렉시옹 브뤼 부터 뀌베 프레스티지, 뀌베 돔 삐꺄흐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 그리고 일반 로제 샴페인과 뀌베 데 메르베이유 프르미에 크뤼[20]까지 다섯 가지 샴페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첫 와이너리 투어를 만족스럽게 마친 후 어제 잤던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꽤 넓은 공간에 모던한 공간으로 퍽 맘에 들던 곳이었다. 마시진 않았지만, 샴페인을 만드는 가문의 아들이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로 자신들의 샴페인이 항상 냉장고에 비치가 돼 있었고 저렴한 비용을 내면 냉장고에 있는 샴페인을 바로 먹어도 됐다. 이날은 최고로 불리는 샴페인 두 병을 따는 날로 이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날이었다. 음식은 알자스 전통 슈크루트를 준비했고 보르도 네고시앙 샵에서 구한 1995년 빈티지의 돔 페리뇽, 그리고 2002년 빈티지의 크뤼그였다. 돔 페리뇽은 숙성이 충분히 됐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하여 어렵게 구했고 올드 빈티지 샴페인을 접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힘은 이미 다 빠져있었지만, 여전히 기포가 섬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샴페인을 그것도 오래된 빈티지를 드시니 특히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크뤼그는 꽁뜨 드 샹빠뉴와 항상 고민하는 최애 샴페인이었다. 둘 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방문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한 자리에 두고 마실 수 있어 영광이었다.




 다음날 랭스 대성당으로 가 여유롭게 한참을 구경하고선 파리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 동안 나를 괴롭히지 않았던 노란 조끼 시위대는 파리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차를 반납하러 가는 길, 대형 로터리를 점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곳이 막히는 것이 아닌, 로터리 자체만을 진입해서 진출까지 30분이 걸렸고 이 망할 수동 변속 차량 덕분에 발에 쥐가 올 뻔했다. 욕지거리를 해대며 겨우 차량을 반납하고선 오랜만에 온 파리 시내를 걸었다. 3월이 마지막이었을 테니 9개월 만이었다. 시골에 살다 보니 파리가 참 싫었다. 사람도 너무 많았고, 치안이고 위생이고 좋은 게 하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오면 예뻐 보이는 게 애증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프랑스에 온 지 350일이 넘어 처음으로 반짝반짝 빛이 발광하는 에펠탑을 구경했다. 그리곤 숙소로 돌아가 마지막 샴페인을 비웠다. 두 병이 또 부족해 랭스에서 부랴부랴 사 온 샤르또뉴-따이에, 뀌베 쌩뜨 안느와 라르망디에-베르니에, 떼흐 드 베르튀스 프르미에 크뤼[22]가 마지막을 장식해주었다. 여행을 끝내고선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정리할 짐도 많았고 만날 사람들도, 혹시 가볼 만한 와이너리 투어가 있을까 하여 다시 보르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래도 1년 동안 지내며 좋아했던 것들을 어머니와 나눌 수 있어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1] 오리 테린(Terrine de Canard):

[2] 르끌레르 브리앙, 레제르브 브뤼(Leclerc Briant, Réserve Brut), 드 수자, 그랑 크뤼 레제르브 브뤼 블랑 드 블랑(De Sousa, Grand Cru Réserve Brut Blanc de Blancs): 샴페인 이름

[3] 쌩-자크(Saint-Jacques): 관자

[4] 브누아 라아예, 블랑 드 누아(Benoît Lahaye, Blanc de Noirs), 프랑크 봉빌,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 엑스트라-브뤼(Franck Bonville, Grand Cru Blanc de Blancs Extra-Brut): 샴페인 이름

[5] 프레데릭 사바흐, “라꽁쁠리” 프르미에 크뤼 엑스트라 브뤼(Frédéric Savart, “L’Accomplie” Premier Cru Extra-Brut), 아그라빠흐 에 피스, 그랑 크뤼 “떼루아” 블랑 드 블랑 엑스트라-브뤼(Agrapart & Fils, Grand Cru “Terroirs” Blanc de Blancs Extra-Brut): 샴페인 이름

[6]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마르세유의 유명한 음식으로 여러 가지 생선을 넣고 오랜 시간 낮은 온도에 졸인 생선 스튜 요리이다.

[7] 조르주 라발, 갸렌느 프르미에 크뤼(Georges Laval, Garennes Premier Cru), 호세 미쉘 에 피스 스페셜 클럽(José Michel et Fils Special Club): 샴페인 이름

[8] 니꼴라(Nicolas):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랑스 남자 이름으로 전국에 체인점을 가진 와인샵이다.

[9] 뵈브 클리코 빈티지 브뤼(Veuve Clicquot Vintage Brut), 도츠 브뤼 클래식(Deutz Brut Classic): 샴페인 이름

[10] 에글리-우리에, 브뤼 트라디씨옹 그랑 크뤼(Egly-Ouriet, Brut Tradition Grand Cru), 자크쏭, 데고르주멍 타르디프 뀌베 735(Jacquesson, Dégorgement Tardif Cuvée 735): 샴페인 이름

[11] 빠삐요뜨 드 쏘몽(Papillote de Saumon): 종이(papillote)에 싼 채 오븐에 구워낸 연어 요리

[12] 떼땅져(Champagne Taittinger): 샴페인 와이너리 이름

[13] 떼땅져 브뤼 레제르브(Taittinger Brut Réserve): 샴페인 이름

[14] 꽁뜨 드 샹빠뉴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Comtes de Champagne Grand Crus Blanc de Blancs): 떼땅져에서 만드는 최고급 샴페인 이름

[15] 앙리 지로(Henri Giraud): 샴페인 와이너리 이름

[16] 에스프리 나뛰흐 브뤼(Esprit Nature Brut), 퓌 드 쉔 MV13 브뤼(Fût de Chêne MV13 Brut), 담-잔 로제(Dame-Jane Rosé): 샴페인 이름

[17] 하타피아 샹프누아(Ratafia Champenois): 샴페인 지역 리큐르 명칭

[18] 솔레라(Solera): 리큐르 이름

[19] 꼴라흐-삐꺄흐(Champagne Collard-Picard): 샴페인 와이너리 이름

[20] 뀌베 셀렉시옹 브뤼(Cuvée Sélection Brut), 뀌베 프레스티지(Cuvée Prestige), 뀌베 돔 삐꺄흐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Cuvée Dom. Picard Grand Cru Blanc de Blancs), 로제(Rosé), 뀌베 데 메르베이유 프르미에 크뤼(Cuvée des Merveilles Premier Cru)

[21] 돔 페리뇽(Dom Pérignon), 크뤼그(Krug): 샴페인 이름

[22] 샤르또뉴-따이에, 뀌베 쌩뜨 안느(Chartogne-Taillet, Sainte Anne), 라르망디에-베르니에, 떼흐 드 베르튀스 프르미에 크뤼(Larmandier-Bernier, Terre de Vertus Premier Cru): 샴페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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