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지와 사랑

오늘의 오감 깨우기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by 제니스 서

어떤 음악, 어떤 소설, 어떤 풍경, 어떤 사람, 어떤 사건은 한순간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그동안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세계를 보게 한다. 눈이 있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보이는 것이 또 전부는 아니다. 보이는 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누릴 수 있는 감식안이 있어야 한다. 들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다른 감식력은 타고난 감각이 빼어난 몇몇만이 가질 수 있는 지적 사치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깨우고 계발하고 누릴 수 있는 능력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남자가 서먹한 시각 장애인 로버트와 텔레비전을 함께 시청한다. 유럽 여러 도시의 대성당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로버트는 남자에게 대성당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말한다. 남자는 아주 높고 크다는 표현을 한 후 말문이 막힌다. 로버트는 종이 위에 펜으로 성당을 그려달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남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겹쳐진 손은 뾰족한 첨탑, 둥근 아치 모양의 창문을 그려간다. 성당을 그린 후 로버트는 한 가지 더 제안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그려보라고, 단, 눈을 감고. 남자는 로버트와 함께 풍경을 손으로 만지며 경이로운 느낌에 사로잡힌다.


남자는 눈 뜨고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을 감고 비로소 본 것이다. 시각 장애인의 시각을 통해서.



시력과 청력이 없던 헬렌 켈러는 어떠한가. 그녀는 53세에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깊게, 진정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눈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선, 구도, 형태와 색상의 장점을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만약 제가 눈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그토록 매혹적인 배움에 기꺼이 뛰어 들었을까요!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들 대부분에게도 예술의 세계는 탐험되지 않고 밝혀지지 않은 어두운 밤이라고 들었습니다.”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감각하게 무감동으로 흘려보내는 오늘의 오감을 깨워야 한

다.


헬렌 켈러는 에세이의 끝에서 이렇게 권한다.


“내일이면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들도 그렇게 사용해보세요. 내일이면 더는 듣지 못할 사람처럼 목소리의 노래를, 새들의 노래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을 들으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자연이 선사하는 다양한 접촉 수단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드러내는 모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영광스럽게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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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하는 작품들은 우리의 오감을 깨울 만한 음악들이다. 음악은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과 연주는 음악가들이 이미 경험한 대상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그려 보인다. 감상은 그들이 손끝에서 그려내는 음표와 울림에 손을 얹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최대한 발휘해, 상상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속의 거울>은 표면을 넘어 이면의 세계까지 보도록 초청한다. 이 곡에는 세 가지 음의 흐름이 있다. 먼저 3개의 음으로 구성돼 반복적으로 들리는 청아한 종소리가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서서히 침잠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높거나 낮은 곳에서 시시로 잔잔히 퍼지는 울림은 의식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각성시킨다. 마지막으로 긴 호흡으로 이 두 울림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주요 선율은 모든 것을 관조하듯 명상적으로 흘러간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극히 단순하고 맑고 느리고 고요한 세계를 만든다. 패르트가 단 하나의 음표도 내지 않던 긴 침묵 끝에서 세상에 내보낸 이 곡은 음악과 침묵의 경계를 신비롭게 오간다. 몇 개의 음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만한 세계가 열린다. 첫 종소리부터 침묵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공간에 스며든다. 잔향으로만 이뤄진 듯한 이 음악에는 어떤 강한 음향도 극적 변화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음악보다도 귀에 감기고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뭉근한 힘이 있어 듣노라면 우리의 내면의 모습을 무한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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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의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화음 프로젝트 Op.195)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등에 업은 아이와 다정하게 눈을 맞추는 아버지를 묘사한 김진열 작가의 <눈맞춤>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등에 업힌 아이를 돌아보는 아버지의 자애로운 눈빛과 너른 등에 안온히 안긴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마주한다. 이재구는 이 모습을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로 만들어 눈맞춤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고 꿈을 꾼다. 아버지의 사랑스런 눈빛을 받으며 아이는 꿈길 위를 뛰논다. 이재구는 이렇게 설명했다. “첼로는 아빠를, 바이올린은 아이를, 플루트는 아이의 꿈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를 담아내는 환상공간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음악에서 긴 지속음은 지긋한 눈맞춤을 나타내고 신나게 통통 튀는 셔플리듬은 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표현한다. 우리 눈앞에 긴밀한 교감을 나누는 정경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레의 <녹턴 13번 B단조, Op.119>를 추천한다. 녹턴은 야상곡, 즉 밤을 위한 노래이며 가사 없는 시다. 포레는 세련된 시적 정취가 담긴 13개의 녹턴을 남겼다. 이 곡들은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을 걸며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포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교육과 창작에 많은 힘을 썼는데 생의 후반에 청력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는 내면에 흐르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마지막까지 걸작들을 완성했다. <녹턴 13번>은 1922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녹턴으로, 인생의 밤을 맞이한 그의 성찰적 시각과 절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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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의 노래에 온전히 잠기기 위해 눈을 감고 들어보면 어떨까?


흔히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린다고 하는데, 실제로 청각이 좋아진다기보다는 들리는 것에 주의력이 극대화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청각을 상실한 포레의 이 곡이 어쩌면 우리에게 오롯이 듣는 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소설 <대성당>에서 함께 손을 포개 대성당을 그리면서 오롯이 시야가 트인 남자가 마지막에 이렇게 감탄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퀘스천 2025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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