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 여 일 전,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고, 어제 또 한 번 세상이 바뀌었다.
다음날 김장을 위해 일찍 눈을 붙였던 나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었고, 간밤에 있었던 일을 뒤늦게 팔로업하며, 놀람과 분노, 불안과 안도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었다. 이 정부 들어 주식은 애저녁에 박살 나 있었지만, 그날은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격앙되어 있는 내게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는 김치소를 묻히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내가 한 말을 제 생각인 양 고스란히 전달했다. “외국인들이 다 빠져나갈 텐데 투자한 사람들은 어쩌라는 거야” 정치에 무관심한 엄마가 분노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몇 년간에 걸쳐 정신교육을 시킨 보람을 잠시 느꼈었다.
김장을 서둘러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부터 어제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나의 일상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실시간으로 속보가 터져 나왔고 줄곧 정치 뉴스만을 찾아보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럴 바엔 집회에 나가자 싶어 몇 차례 국회 앞을 찾았으며 20~30대 아이들과 멜로디만 언뜻 아는 다시 만난 세계를 따라 부르며 인류애를 느끼고 돌아와 냉기가 도는 몸을 뜨거운 물에 지지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몇 년간 혈압을 오르게 한 부부의 종말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라고 한 그 말보다 내게 다가왔던 말은 희망은 힘이 쎕니다, 였다. 절망과 희망이 이토록 가까이 붙어있을 줄이야. 피로 얼룩진 패배의 역사를 디딤돌 삼아 이제는 형형색색의 빛이 나는 승리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제 누구도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침탈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추상적이고 어딘지 오글거리는 그 말은 어제 또다시 입증되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왜 내 삶은 바뀌지 않았느냐는 질타를 기억한다는 정치인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선두에서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그는 시민이 참여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가자고 했다. 희망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한 그 말은 내게 그 무엇보다 힘이 쎈 희망을 품게 하였다. 몇겹씩 옷을 껴입고 스타킹에 등산양말에 종아리까지 오는 무거운 털부츠를 신고 만오천보를 넘게 걸었음에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하며 바뀐 세상에 걸맞은 민주시민이 되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어제와 달라진 세상이 밝아오고 있다. 희망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 아침 일찍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에 눈이 떠진 것도,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그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제 몫을 다해준 정치인들과 가깝게 혹은 멀리서 지지를 보내준 이들과 추운 겨울 맨바닥에 앉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기적을 선사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