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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Sep 09. 2023

돌아갈 결심

이제 제주기억을 bxd 유튜브에서도 만나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uUyGXsltt6g


이른 아침 갈만한 곳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카페는 영업 전이었고 곽지해수욕장에 처연히 앉아 있으려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라섹수술의 부작용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대가로 인공눈물과 썬글라스는 필수였고, 핸드폰과 컴퓨터의 과도한 사용은 빛 번짐과 안구건조증을 악화시켰다. 하는 수 없이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털고 쫓겨나듯 차로 돌아왔다. 어디로 갈까. 그동안 기대를 품게 했던 질문이 오늘따라 숙제처럼 여겨졌다. 결국 선택한 곳은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였다. 차를 끌고 시골길을 올라가면서도 이곳에 왜 가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여행이 일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일 아침 유적지는 고요했다. 항상 그렇듯이 먼저 입구에 서서 안내판의 설명을 읽었다. 항파두리의 항은 항아리를 뜻했고 파두리는 둘레를 뜻하는 제주 방언 바두리에서 온 말이었다. 즉, 항아리 모양의 요새라는 뜻으로 1271년 진도가 고려•몽골연합군에게 함락되자 삼별초는 제주도로 와 이곳에 성을 짓고 마지막 결사항쟁을 준비한다. 삼별초, 김통정 장군, 몽골 같은 단어들을 보자 오랫동안 정지해 있던 기계에 기름칠을 한 듯 끽끽 대며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삼별초는 2년 6개월을 더 버텼고 전원이 순의했다. 최후까지 삼별초를 지휘했던 김통정 장군은 붉은오름으로 퇴각한 뒤 자결했고 이로써 39년간의 항몽투쟁이 막을 내린다.

지금은 잔디에 약을 뿌려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입구에 들어서려는 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 제지했다. 여자는 약이 충분히 휘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대신 토성을 둘러볼 것을 권했다. 여자가 말한 곳으로 올라가자 잘 정돈된 야트막한 언덕이 나왔다. 성이라 하기엔 아담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지금이야 아래 길이 깔려 원래의 높이를 실감할 수 없지만, 본래 토성은 높이 5m, 너비 3.4m 총 길이 6km에 이르는 외성이었다. 이 안에 800m의 내성을 쌓아 이중 성곽을 짓고, 각종 방어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추었다. 결사 항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 이곳은 잘 가꾸어진 산책로가 되었다.

그냥 걷기에는 좀 심심해서 토성 위로 올라섰다. 머리보다 높았지만 한달음에 올라갈 수 있었다. 바깥쪽으로 드문드문 난 나무 사이로 도로와 집과 아파트가 보였고 멀리 해안가가 보였다. 이곳에서 보초를 선다면 몽골군이 접근해 오는 것이 훤히 내다보일 것 같았다. 반대쪽으로는 유채꽃이 막 개화를 준비 중이었다. 거의 토대 위에 세워진 현재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삼별초의 난이라고 배웠다. 몽골에 굴복한 원종은 삼별초의 해산을 명했고 이에 반발한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넘어가 용장성을 짓고 고려를 계승한 또 하나의 정부를 세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면 반국가세력이었던 셈이다. 삼별초의 요구는 몽골로부터의 독립과 자주 국방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는 외세와 합심해 삼별초를 공격한다. 무능한 정부는 언제나 국민을 적으로 돌렸다. 몽골에 바쳐야 하는 조공에 허리가 휘어가던 백성 중 일부는 삼별초와 함께 봉기에 나선다. 근래에 와서 난이 항쟁으로 격상된 이유다. 결과적으로 삼별초는 전멸했고 백성은 고혈을 바쳐야 했으며 고려는 백여년간 원나라로부터 내정간섭을 받는다.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질문을 남겼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걷다 보면 생각은 본질을 향해 나아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 개개인의 지향대로 살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 누구도 그것을 반국가라 정의할 수 없다. 토성을 따라 내리막을 달렸다.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뜀박질이 빨라졌다.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로웠다.

와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자유를 향한 외침이었다.



한참을 걷다 오르막 끝에 이르렀다. 이제 고개만 넘어가면 다시 유적지다. 관광객이 토성을 걷다 지쳤을 것을 미루어 알고 한에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발라당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머리의 방향으로 보아 제주를 떠나는 비행기였다.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제주에 오기로 결심했던 그때처럼 불현듯 돌아갈 결심을 했다. 제주에 온 지 2주만이었다.


야트막한 토성
토성 안쪽으로 고개를 든 유채꽃
토성 내리막길
자유를 향한 뜀박질
오르막길 끝 포토존
제주를 떠나는 비행기
아직 복원 중인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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