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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Sep 13. 2023

돌고래를 만날 확률

이제 제주기억을 bxd 유튜브에서도 만나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vPUuWJX72zk


혼자 먹기 좋은 음식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에게는 (라면을 제외하고) 단연코 카레다. 반찬도 필요 없고 접시도 하나면 족하다. 야채가 들어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요리 방법도 간단하다. 내 경우는 온갖 야채를 잘게 썰어 끓는 물에 한꺼번에 넣고 고형 카레를 던져주면 끝이다. 맛은 언제나 카레 맛이니 실패할 리도 없다. 1인 가구로 긴긴 시간을 지낸 나에게 카레는 특식이자 소울 푸드이자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선택하는 만만한 메뉴이기도 했다.

카레 집은 2층에 있었다.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고 핸드폰으로 숙소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선이 꼬여버렸다. 원래 묵으려던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에 자리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오늘은 다른 숙소를 예약했다. 리뷰가 좋은 숙소는 급하게 예약하면 항상 자리가 없었다. 미리 예약을 해두면 좋았겠지만 계획대로 사는 건 왠지 답답했다. 제때 졸업해서 취업하고 가정을 꾸리고 토끼 같은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보통 성실함과 희생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때 해내지 못했다. 늦거나 안 하거나. 엄마의 말 대로 늦게 철이 드는 것일 수 있겠으나 그냥 좀 달랐던 것 같다. 한때는 그 다름에 고무되어 교만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불안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러다 영영 뒤처지면 어쩌지.

다름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동반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길이 아닌 길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안정적으로 분류되는 삶을 살았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잠 못 이루고, 더 예민했으며, 매일 짓누르는 공허함에 푸석푸석 메말라갔다. 부족하지만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는 지금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개인의 삶의 여정을 가두지 않으면 좋겠다.

식사 후 들를 카페까지 검색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무심코 창밖 너머 바다를 바라보는데 뭔가가 쓱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뭐지. 뭔가가 뒤 이어 또 쓱 하고 튀어나왔다.

저게 뭐예요?

마침 주문한 카레를 내오던 알바생에게 물었다. 알바생은 쟁반을 내려놓고 사장을 불렀다.

사장님, 저거 돌고래 맞죠?

앞치마를 입고 나온 사장이 저건 해녀인데, 했다.

아니, 그 뒤예요.

내가 말했다. 그 언저리에서 또 무언가가 쓱쓱 하고 연달아 나왔다 들어갔다.

맞네, 돌고래네.

나와 사장과 알바생은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무심결에 만난 돌고래 무리를 보자 모두가 약속한 듯 들떴다. 돌고래들이 번갈아가며 바다 위로 튀어 오를 때마다 오오 소리를 냈다.  

저게 몇 마리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돌고래들은 혼자 뛰기도 하고 동시에 같이 뛰기도 하고 저들끼리 피서라도 온  신나게 물장구질을 해댔다. 보기 어렵다는 돌고래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여섯 마리니까 여섯 개의 소원을 빌어야지. 나, 엄마, 아빠, 조카, 동생 내외의 안위를 빌었다.

돌고래 무리가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숟가락을 들었다. 카레가 식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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